"어디 가서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없었어요.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A씨는 최근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A씨는 고된 업무에도 환자 돌보는 일이 좋아 사명감으로 일해왔지만, 1년 전부터 상급자에게 따돌림 등 괴롭힘을 당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결국 정신과 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일을 포기했다.
의논할 곳 없던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고용평등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A씨는 상담을 통해 용기를 얻었고, 일하던 병원에 '직장 내 괴롭힘 고충' 진정을 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면서 A씨는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게 됐다.
A씨는 "저처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느 곳을 찾아가야 할지 막막해 쉽게 자포자기하게 된다. 그럴 때 전화 한 통으로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고용평등상담실이다"라며 "노동자 입장에서 부담없이 찾아가 도움받을 수 있는 상담실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24년 동안 지역 노동자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해 온 고용평등상담실이 폐지 위기에 처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00년부터 민간 보조사업으로 운영하던 고용평등상담실을 내년부터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내년도 고용노동부 예산안에서 고용평등상담실에 대한 민간 보조사업 지원금 항목은 사라졌다. 해당 예산안은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아 현재 국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고용평등상담실은 직장 내 성차별, 성희롱,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노동 문제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전국 민간단체 19곳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대구에서는 대구여성회와 대구여성노동자회를 통해 상담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사업 예산을 지원받아도 민간단체의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상황은 열악하다. 올해 기준 고용노동부의 보조금 예산은 12억원이다. 19개 단체가 나눠가지면 한 곳당 6천만원 남짓이다. 대구여성회는 6천만원이 안 되는 예산을 받아 상담원을 고용하고, 내담자에게 무료로 법률 자문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곳 상담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1년 동안 평균적으로 500~800건의 상담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마저도 중단하겠다는 방침이다. 고용부는 민간단체 보조금 사업 대신 전국 고용노동청 8곳에 고용평등상담창구를 마련해 전문 상담 인력을 2명씩을 두겠다고 밝히며 예산을 5억원으로 축소했다. 고용노동청이 상담뿐 아니라 민‧형사 등 법적 대응과 근로감독까지 직접 수행하도록 개편해 실질적 피해 구제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시민단체에서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25일에는 전국 19곳 단체가 모인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가 서울 국회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전국 19곳 상담실이 지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6만8천70건, 연평균 7천640건의 상담을 진행해왔다"며 "기존 단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 고용청 8곳에서 모든 사건을 내담자와 밀착해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예민 대구여성회 대표는 "고용평등상담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전반에 대한 예산 삭감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 지원받는 계층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이는 사회구조에 대한 공격"이라며 "앞으로 시민단체들과도 힘을 합쳐서 시민들에게 고용평등상담실의 존치‧확대에 대한 중요성을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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