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꽃들의 전쟁(花鬪)

속이기 쉬운 화투판, 가짜뉴스 판치는 정치판과 닮아

화투패
화투패
임상준 경북부 차장
임상준 경북부 차장

명절엔 차례 풍경만큼이나 익숙한 모습이 '꽃들의 전쟁'이 아닐까 한다.

친지·친구들이 모여 벌이는 화투(花鬪). '꽃 싸움'이란 사전적 의미에 걸맞게 48장으로 구성된 각각의 패에는 꽃 그림이 수놓고 있다.

16세기 후반 포르투갈과 본격적인 무역을 하던 일본에서 태생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선교사가 가져온 트럼프 카드는 짙은 도박성 탓에 금지령이 내려졌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다른 그림들로 채워 사용한 것이 화투라는 것이다.

물론 작금에는 고스톱이 국민 게임으로 자리 잡은 통에 한국이 화투의 본고장처럼 돼 버렸지만 엄연히 물 건너온 놀이다. 난리(6·25) 때 조선인민군조차 화투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역사(?)를 자랑한다.

이런 대중적 화투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바로 '사기성'이다.

화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카드 게임 중에 사기도박이 가장 빈번한 게임이라고 알려져 있다. 트럼프 등 다른 카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패의 크기가 작아 숨기거나 바꿔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명절 연휴 화투 소비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하니, 어느 곳에서 누군가는 작든, 크든 사기 시비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고 보면 화투판과 정치판은 사뭇 닮은꼴이다.

화투는 한 끗이라도 높은 사람이 판을 쓸어간다. 정치판처럼 승자독식이다. 지는 쪽은 모든 걸 잃는다.

속이거나 사기를 치기 쉬운 점도 비슷하다.

계단 치기, 밑장 빼기 등의 손기술을 통해 판도를 단번에 뒤집는 화투처럼 정치도 번지르르하고 가짜 뉴스로 진실을 속이기가 '여반장'(如反掌)이다.

지난 정부가 착한 부동산 정책이라 내세우고, 소득주도성장이 삶을 나아지게 했다며 각종 통계를 조작, 국민을 기만한 것이야말로 화투판의 밑장 빼기와 다름없다. 좋은 패만 들어오게 해서 여론과 선거 향배를 단숨에 바꿔 버렸으니 말이다.

가난한 청년 정치인 행세를 하며 돈벌이에는 아마추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던 한 청년 야당 의원은 알고 보니 수십억 원을 굴리는 '코인 타짜'였다.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이다. 같은 당 출신의 또 다른 여성 의원 역시 위안부 할머니를 앞세워 '앵벌이'시켜 돈을 갈취했다. 사기도박패와 별반 다르지 않다.

거대 야당의 대표는 또 어떤가.

180석 가까운 막강한 의석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모두가 말리는 '못 먹어도 고' 단식을 했다. 목숨까지 걸 태세였건만 방탄 국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자 슬그머니 단식을 접었다. 영장이 기각되는 대박까지 터지자 '대통령 나오라'며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친다.

'귀신'(내가 낸 걸 내가 먹는)을 한 셈인데, 귀신했다고 당장 판을 이기란 법은 없다. 막판 귀신은 피 한 장씩 주지 않는 게 '국룰'이다. 위안부 할머니, 코인 의원, 통계 조작, 대표 사법 리스크로 까먹은 야당이 3점을 내기엔 한참 멀었다.

'좋아라' 독주하던 여당도 '독박' 쓰게 생겼다.

화투를 잘 치지도 못하면서 '쓰리고'만 외치다 영장 기각에 불이 떨어졌다. 상대의 '낙장불입' 자책골과 코주부 보너스 패(한 장 더)로 난 점수였거늘…. 오만과 독선으로는 '진흙탕 공천'이 재연되지 말란 법 없다.

내년 총선 앞에 또 어떤 꽃들의 전쟁이 펼쳐질지 모른다. 이 시점에 충고 한마디.

영화 '타짜'에는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화투는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치는 거다."

언변이 아무리 능통해도, 가짜 뉴스에 도통해도, 통계 조작에 통달해도, 우리네 정치도 국민을 감동케 하는 마음으로 하는 거라면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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