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채정민 기자의 '니하오, 항저우'] '늘푸르른 소나무처럼', 우즈벡 체조 옥산나 추소비티나

소련→우즈벡→독일→우즈벡 대표로
40여 년 선수 생활, 올림픽만 8회 출전
이번에도 도마 출전, "파리 때도 뛸 것"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한 인민일보 뉴스를 소개하는 스크린. 우즈베키스탄 여자 체조 대표 옥산나 추소비티나에 대한 얘기를 전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한 인민일보 뉴스를 소개하는 스크린. 우즈베키스탄 여자 체조 대표 옥산나 추소비티나에 대한 얘기를 전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어라? 이 선수 낯이 익은데?' 중국 항저우의 메인미디어센터 한쪽에 세워진 스크린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한 중국 인민일보 뉴스를 스크린에 띄우는데 어디서 많이 본 외국 선수 얼굴이 보인다. 이름을 보는 순간 "아하!". 놀랍다. ' 이 선수가 아직 뛴다니.' 서로 아는 얼굴은 아니지만 반갑다.

늘 푸르른 소나무같다. 수십 년째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고 있다. 운동 선수로선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 선수가 다수인 종목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우즈베키스탄의 여자 체조 국가대표 옥산나 추소비티나 얘기다.

추소비티나는 1975년생. 48살이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련 시절 체조에 입문했다. 7살 때부터 40여 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가 참가한 올림픽만 8개 대회다. 시쳇말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셈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현장 취재 때 전한 옥산나 추소비티나의 이야기. 채정민 기자
2016년 리우 올림픽 현장 취재 때 전한 옥산나 추소비티나의 이야기. 채정민 기자

추소비티나가 낯이 익은 건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그에 대한 기사를 쓴 적 있어서다. 당시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리우를 찾았던 기자는 추소비티나의 사연을 소개한 바 있다. 그의 얘기는 '아들 치료 위해 국적도 바꾼 강한 엄마'란 제목의 기사 (https://news.imaeil.com/page/view/2016081005281605764)에 담았다.

당시에도 이미 그의 나이는 40대. 딸이나 다름 없는 선수들과 실력을 겨뤘다. 나이도 눈길을 끌었지만 그를 더 주목한 건 사연 많은 인생사 때문이었다. 그는 소련 대표를 거쳐 소련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 국기를 달고 세계 무대에 나서다 2008년 독일 선수로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다.

독일로 국적을 바꾼 건 아들 알리샤의 백혈병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독일에 은메달을 안긴 그는 아들의 병이 낫자 다시 조국 우즈베키스탄 유니폼을 입었다. 추소비티나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체조뿐이었다. 아들이 괜찮아지기 전까지 나는 늙을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옥산나 추소비티나의 사진이 실린 중국 항저우 현지 아시안게임 소식지. 채정민 기자
옥산나 추소비티나의 사진이 실린 중국 항저우 현지 아시안게임 소식지. 채정민 기자

그는 리우와 도쿄 올림픽을 거쳐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무대에도 나섰다. 체조 선수로선 환갑을 지나 팔순을 넘긴 나이. 숱한 부상을 딛고 선 추소비티나는 이제 도마 종목에만 집중한다. 이번 대회 도마 결선 출전자 8명 중 그를 제외하면 모두 2003~2006년생이다. 추소비티나와 서른살 정도 차이 나는 소녀들이다.

유럽과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과 아시안게엠을 통틀어 추소비티나가 딴 메달은 22개(금 6, 은 9, 동 7). 이번 대회에선 메달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다. 도쿄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다시 돌아왔다.

내년 파리 올림픽까지 뛴다는 게 추소비티나의 각오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모든 건 지나가기 마련이니까.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바라본다'는 게 그의 신조. 추소비티나는 "난 체조를 사랑하고 여전히 현장에서 뛰길 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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