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세종 동상 앞에서 『세종실록』 28년(1446) 9월 기사를 펼쳐본다.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 이를 기려 1926년 조선어연구회가 음력 9월의 끝날 29일에 해당하는 그해 양력 11월 4일을 '가냐날'로 삼았다. 1928년, '가갸날'을 '한글날'로 바꿨고, 1931년 날짜를 고쳤다. 음력 9월 29일이다 보니 매년 달라졌다.
1446년 9월 29일을 현대 양력인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니 10월 28일이었다. 그래서 10월 28일을 한글날로 고정시켰다. 그런데, 1940년 안동에서 간송 전형필이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에 정인지가 썼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냈다. 정통은 명나라 6대 황제 정통제의 연호로 11년은 1446년, '상한'은 상순(1일-10일)이다.
1946년 일제 강점기가 끝난 1년 뒤, 9월 29일을 9월 상순의 끝날 9월 10일로, 즉 양력 10월 28일을 10월 9일로 19일을 앞당겼다. 이렇게 결정된 한글날을 맞아 인류 문자의 역사를 짚어본다. 고대인들은 문자가 어떻게 생겨났다고 믿었을까?
◆문자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보자. 17세기 후반부터 예술품을 소장해 오다 프랑스 대혁명 뒤, 1793년 정시 개관한 루브르 박물관에는 2022년 기준 연간 800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든다. 루브르의 3개 전시관 중 가운데 위치한 셜리관 이집트 전시실로 가면 흥미로운 도자기 유물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푸른색 유약을 발라 반짝이는 도자기에는 2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오른쪽은 따오기 얼굴을 한 기록의 신 토트다. 왼손에 나일강의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열쇠, 앙크(Ankh)를 들었다. 오른손으로 이집트 상형문자가 담긴 파피루스를 왼쪽에 서 있는 인간에게 건네준다. 이렇게 문자가 신의 선물이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서양세계에서 자연스러웠다.
로마제국 후기 이후 서양 사회를 지배한 기독교는 유대 역사서 『구약성경』을 신봉한다. 구약에는 창조주 야훼가 시나이 반도 광야에서 모세에게 언약궤(약속의 서판), '십계명'을 전한다. 신이 문자를 만들어 약속의 말씀을 적은 뒤, 인간에게 준 것이니 문자는 신의 선물이었다. 인류 문자의 기원을 이스라엘 히브리 문자로 생각해 왔다. 학문적 연구결과도 그럴까?
◆문자는 "하나, 둘..." 수효를 세는 '셈'에서 출발
1753년 하노버 왕조 조지 1세 때 문을 연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앞에 서면 덕수궁 석조전이 떠오른다. 1852년 외장 공사를 마친 대영박물관처럼 덕수궁 석조전도 영국인이 설계한 네오 클라식 양식이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연간 400백만 명 넘게 방문하는 대영박물관 2층 메소포타미아 전시실에 작고 동그란 점토판이 손짓한다.
점 3개와 선 3개가 새겨졌다. 문자가 나오기 전 선사 시대 사람들이 수효를 헤아리기 위해 만든 B.C 33세기 경 표식(Token)이다. 이라크 젬데트 나스르 유적에서 출토됐다. 고고학자들은 B.C 7천여년 이후 만들어진 수효 표식들을 다양한 신석기 농사 문명지에서 발굴해 냈다.
그중 한 명인 여성학자 데니스 슈만트 베세라트는 1996년 쓴 『인간의 쓰기는 어떻게 생겨났는가(How Writing Came About)』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결론 내린다. "인간의 쓰기는 하나 둘 세는 것에서 나왔다(Writing emerged from counting)". 무엇인가 숫자를 세는 가령, 거둬들인 농작물에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방식으로 수효를 표시하다 문자로 발전했다는 가설이다,
◆메소포타미아 문자의 출발은 상형문자
루브르 리슐리외관 메소포타미아 전시실에서 점토판 유물을 만나보자. "메소포타미아 문자가 처음부터 쐐기문자였을까?"라는 의문은 B.C 33세기경 사람 손, 나무, 강물, 사자, 얼굴, 물병 등을 새긴 점토판을 보는 순간 쉽게 풀린다. 물체의 형상을 본 따 만든 상형문자(象形文字)다. 여기서 시간이 좀 흐르면 그림 옆에 점을 찍어 수효를 표시한 점토판이 등장한다.
대상물(referent), 즉 빵이나 가축, 물병 등을 그리고, 여기에 수효를 넣어 특정한 스토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명확한 의사소통의 문자 커뮤니케이션 시대가 막을 올렸음을 알려준다. 인류 역사 문자의 탄생은 그림문자, 즉 상형문자다. 그럼 쐐기문자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메소포타미아 상형문자, 쐐기문자로 진화
루브르에서 보는 이라크 쉬르팍 출토 B.C 2600년 점토판 문서는 토지와 집 매각 내용을 담았다. 그림이 아니고 부호형태다. 상형문자가 어느 순간 부호로 바뀐 거다. 그 부호가 '쐐기(Wedge)'처럼 생겨 쐐기문자, 한자로 '쐐기'가 '설(楔)'이어서 설형문자(楔形文字)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큐니폼(Cuneiform)'이다. 라틴어로 '쐐기'는 '쿠네우스(Cuneus)', '형태'는 '포르마(Forma)'다.
이를 따 프랑스어 '퀴네이포르므(cunéiforme)'가 생겼고, 영어 사용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물의 형태를 일일이 그려 표현하다 부호로 바꾸자 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다양한 표현도 가능했다. 눈에 보이는 구상(具象)의 세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추상(抽象)의 세계도 표현하면서 계약, 법전, 문학작품도 선보였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가면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가장 오래된 법전인 B.C 24세기 우르카기나왕 개혁책 점토판을 만난다. 단군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됐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중인 B.C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은 고도로 진화된 형태의 쐐기문자로 쓰였다. 대영박물관은 상형문자가 쐐기문자로 진화하는 과정을 알기 쉽게 그림표로 만들어 탐방객의 이해를 돕는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는 어땠을까?
◆메소포타미아와 동시대 이집트 상형문자 등장
이집트 조형 예술품이 즐비한 루브르에서 문자의 역사와 관련해 시선을 압도하는 작품은 '서기좌상'이다. 빼어난 균형미와 사실적 표현기법의 좌상은 책상다리로 반듯하게 앉아 파피루스 스크롤을 무릎 위에 얹고 필기하는 자세다. B.C 26세기-B.C 25세기 필기문화가 스며있다.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비슷하거나 약간 늦은 시기 문자 시대로 들어갔다. 독일 고고학팀이 1998년 역사고도 아비도스 무덤에서 발굴한 300여개의 진흙 판에 B.C 3200년 경 초기 형태 상형문자가 담겼다.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중인 B.C 31세기 이집트 역사 최초의 왕 나르메르 파라오의 팔레트에도 초기 형태 상형문자가 보인다.
B.C 29세기 이집트 역사 2왕조 때 상형문자는 문장 형태로 발전한다. 피라미드 시대인 고왕국 B.C 26세기를 거치면서 늘어난 상형문자는 람세스 2세의 B.C 13세기 800여자, 그리스 로마 시대 5천여자로 증가한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3종류, 알파벳으로도 쓰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거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도 괜찮은 이집트 상형문자는 3종류로 나뉜다. 먼저, 상형문자 히에로글리프(Hieroglyph, 그리스어로 신성한 문자), 일명 '신성(神聖)문자'가 있고, 여기에서 신관들이 쓰기 편하도록 간소화시킨 히에라틱(Hieratic), '신관(神官)문자'가 파생된다.
이를 더 간소화시켜 일반인도 쓸 수 있다는 의미의 데모틱(Demotic), '민중(民衆)문자'가 나온다. 3종류 문자가 동시에 쓰였다. 더욱 중요한 대목은 이집트 상형문자가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뜻글자이면서도 음가를 가진 자음과 모음의 음소(音素, 음의 기본단위)로 활용된 점이다. 상형문자인 동시에 알파벳(Alphabet)이었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 상형문자와 차별화되는 이집트 문자의 우수성이다. 이집트 알파벳이 오늘날 지구촌에 널리 쓰이는 알파벳으로 진화한다. 이 대목은 다음 기회에 살펴본다. 메소포타미아 쐐기문자는 로마시대 70년, 이집트 히에로글리프는 394년, 데모틱은 452년 마지막으로 쓰이고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다. 3천년 넘게 사용된 역사의 무게가 새삼스럽다. 한글 역사는 600년이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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