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지음/한겨레 출판 펴냄

2021년 12월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고(故) 김용균 3주기 추모제에 고인의 동료들이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12월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고(故) 김용균 3주기 추모제에 고인의 동료들이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다은 지음/한겨레 출판 펴냄
신다은 지음/한겨레 출판 펴냄

매일 대한민국에 같은 죽음이 발생한다. 끼여서 죽고, 떨어져 죽고, 불에 타 죽고, 질식해 죽고, 감전돼 죽는다. 산재다.

추석 연휴에도 대구의 한 공사장에서 노동자가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분명 올해 비슷한 죽음을 마주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또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소식을 접하면 늘 의문이 든다. 잘못된 관행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 유가족의 절규에 우리 사회는 어떤 대책 시스템 마련 행보를 보이는 것 같은데 산재는 왜 계속 일어나는 걸까.

매년 800여 명이 일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지만 많은 사고는 공장 담을 넘지 못하고 은폐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죽는가', '왜 이 죽음들이 당연한 일이 됐는가'라는 외침은 공허하다.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공허한 외침에 대한 답이다. 한겨레 기자로 크고 작은 재난 현장을 취재하던 저자는 일터에서 매일 재난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누구도 일하다가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자 이 책을 썼다. 김용균, 이선호, 구의역 김군, 김다운 등 대표적인 사고를 통해 '일터의 죽음'을 낳는 구조적 원인을 파헤친다.

이야기의 시작은 2021년 평택항에서 숨진 이선호 씨다. 그는 갑작스럽게 쓰러진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함께 평택항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사고로 '자는 듯이 엎드린 아들 모습'을 본 뒤 투사가 됐다. 아들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원청 직원은 하청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오래된 장비를 썼다. 선호 씨는 원래 자신이 맡지 않던 일에 투입됐지만 업무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는 전달받지 못했다.

2022년 SPL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소스 만드는 기계의 회전 날개에 끼여 사망하자 회사는 '덮개를 덮고 일하는 게 규정'이라며 사망자에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그 규정을 지키기엔 일의 효율이 너무 떨어졌고 생산해야 할 물량은 너무 많았다.

지금껏 모든 유형의 사고를 관통하는 핵심은 하나다. '누구도 일하는 사람의 안전을 중심에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생산과 효율이 안전을 압도할 때 사고가 발생한다는 점을 우리는 다섯명의 빼앗긴 소중한 목숨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터의 위험이 어떻게 사고로 이어지는지, 사고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책임자인 기업은 조직의 치부가 드러날까 사고를 노동자 과실로 몰거나 은폐하기 바쁘다. 또 다른 주체인 정부는 처벌에만 집중한다.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보다 법 위반 행위를 찾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사고에서도 '법에 맞춘' 똑같은 원인과 대책이 나오기 일쑤다. 노조나 언론은 어떠랴. 이들 역시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가 문제의 핵심에서 겉돌 때 진실에 한발 짝 다가가는 이들이 있다. 죽음이 묻히는 것을 그저 방관하지 않은 이들, 사망자의 동료와 유족들이다. 김용균 씨 사고의 진상이 밝혀지는 데는 동료들의 역할이 컸고 SPL 사고에서는 노조 위원장이 실명으로 회사 주장을 반박하며 작업 과정의 문제를 알렸다. 유족 역시 다른 산재 유족과 연대하는 데 온 삶을 쏟고 있다.

산재는 이렇듯 다양한 관계자들이 벌이는 서사의 싸움이다. 기업은 회사 책임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유족과 동료는 떠난 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기억의 전쟁터'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할까. 산재를 아는 것이다. 산재를 안다는 것은 '떠나간 이들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마음 깊이 추모'하는 일이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심히 넘기지 않고 온몸으로 아파하며 그 죽음을 이해하려는 일이다.

기억하자. 이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자녀를 사랑한 아버지이자 소중한 이들과 여행을 약속한 젊은이었고 자식을 더 풍족하게 키워보려 일터에 발을 디딘 어머니였다. 304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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