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89>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김상훈 옮김/엘리 펴냄

당신 인생의 이야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 책은 SF 과학소설가 테드 창의 소설집이다. 책은 8개의 소설이 실려 있다. 그 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은 네 번째인 '네 인생의 이야기'이다. '외계인'과 '예지'라는 소재를 독특하게 버무려 놓은 맛있는 비빔밥 같은 소설이다.

어느 날 지구상에 외계인이 나타났다. 언어학자인 주인공은 외계인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기 위해 그들과 소통을 시작한다. 7개의 가지와 눈을 가진 외계인을 햅타포드라고 명명하고, 주인공은 그들과 언어를 교류하고, 대화를 위해 햅타포드 식의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사고는 원인과 결과라는 순차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헵타포드의 사고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한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결과를 알게 된다. 빛이 최단시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동하기 전에 최단거리 경로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주인공은 헵타포드적인 사고를 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된다. 딸이 태어나고, 자라며 죽을 때까지의 미래를 알게 된다. 딸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 이 이야기는 비극이나 다름없다. 주인공은 알면서도 예정된 비극을 향해 나아간다.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미래는 현재로 이루어져야 한다. 처음부터 비극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소설은 첫 장면은 주인공이 마치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시작한다. 이후 현재를 주인공의 시점으로 서술한다. 미래와 현재의 두 시점이 반복하면서 소설은 진행된다. 특히나 미래시점은 딸의 행동, 딸과의 대화 등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이것이 이 소설의 비극을 반감시킨다고 생각한다. 확고한 주인공의 서사가 비극이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소설의 말미로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을 잘 나타내 주는 것 같다.

"훗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네 아버지도 떠나가고, 너도 떠나가게 될 거야. 이 순간으로부터 내개 남겨질 것은 오직 헵타포드의 언어 밖에는 없어. 그래서 나는 주의를 기울이고, 그 어떤 세부도 놓치지 않을 작정이야.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자신의 선택에 확고하고, 미래가 비극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순간순간에 집중하려 한다. 아마도 주인공은 나름대로 인생을 행복하게 누리는 방법을 찾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주인공과 달리 수도 없이 흔들릴 것이다. "그 때 그랬어야 했어!"라면서 후회할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울었던 날만큼 웃을 날도 많다. 그러니 앞으로 다가올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행복하길 바란다.

외계인과 헵타포드 언어를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를 추천한다.

임도윤 경상북도교육청 상주도서관 사서
임도윤 경상북도교육청 상주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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