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바닥을 보지 않고는/ 슬픔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세상에는 어떤 말로도/ 위로 받지 못할 슬픔이 있다는 것을'(김태수 시인의 시 '배종호, 산수의 초상화가여' 중)
자식을 잃은 슬픔의 깊이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헤어나올 수 없을만큼 깊은 심연의 늪을, 아버지는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나왔다. 그리고 그는 딸이 남기고 간 작품들을 찬찬히 정리해 세상에 선보이기로 마음 먹었다.
'딸 바보'로 불리던 배종호(74)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과 함께 딸 배설희 작가의 유작전을 연다. 2008년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아버지와 딸'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연 지 15년 만에 함께 작품을 내거는 것.
배종호 작가는 한 번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보지 않은 독학 화가다. 초·중학생 때 동네에 '그림 잘 그리는 아이'라고 소문날 정도로 뛰어난 소질을 보였으나, 뒤늦게 비정상적인 발육 부진으로 인한 장애를 갖게 됐음을 안 이후 자신감을 잃고 10대 후반부터 학업 대신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재주를 살려 그림과 글씨를 직접 그리는 간판 기술자로 일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에서 알아주는 일류 간판 기술자'로 인정 받지만, 마음 한 켠에는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열망이 꿈틀댔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그는 1997년 대동은행 본점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 3년에 한 번 꼴로 개인전을 열어오고 있다. 그는 소나무나 섶다리, 돌허벅, 장엄한 산자락의 풍경을 캔버스에 옮겨왔다.
그의 딸 배설희 작가는 1975년생으로, 계명대 윤리학과를 졸업한 뒤 뒤늦게 미술 전공의 길로 들어섰다. 경기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원에서 멀티미디어아트를 전공한 그는 독창적인 추상화를 선보이며 제10회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서양화 부문 동상을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개인전 및 단체전 등을 통해 탄탄한 화업을 이뤄가며 촉망 받아온 미술계 인재였으나, 안타깝게도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올 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배종호 작가는 "다시 예술대학에 입학했던 걸 보면 그림에 대한 아비의 독한 집념을 닮았나보다"며 "딸과 그림에 대한 얘기를 조잘조잘 나누곤 했다. 추구하는 바는 물론 달랐지만, 누구보다도 서로가 작업세계에 대해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이어 "실력과 열정을 못다 피우고 간 것이 안타깝다. 그래도 이번 전시를 통해 딸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 많은 분들이 눈여겨봐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는 배종호 작가의 누나이자 양초공예 대가로 유명한 배정숙 바르나바 수녀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는 9일부터 15일까지 KBS 대구방송총국 내 갤러리에서 열린다.
"딸아이가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늘에서 아빠와 함께 하는 전시를 보고 기뻐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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