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 있다. 바로 아버지가 계시는 산소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아버지를 그곳에 모셨다. 아버지는 어릴적 나에게 첫 번째 친구이자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신 분이시다.
난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떠나 30대가 되어서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돌아왔을 때 벌써 아버지는 치매초기셨다. 어릴적부터 내가 기억하는 아들로서의 아버지의 모습은 존경스러웠지만 한 인간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새벽에 일어나시면 항상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밥 한술 뜨시고 가게문을 열고, 마치면 운동을 가시고 그렇게 월화수목금토 그리고 주일이면 교회에서 하루종일 계시다 돌아오시는 것을 1년 365일 반복하셨다. 그렇다고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셨다. 오직 집 가게 교회 뿐이셨다. 가족을 위해서 태어나신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는 형이 있다. 형은 어릴적부터 공부도 운동도 잘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유난히 어머니는 형에게 헌신적일 정도로 적극적이셨다. 형이 중학교 학생회장을 하면 어머니는 어머니회장을 맡으셨다. 그런 반면 난 중학교부터 그런 형에게 비교당할 수 밖에 없을정도로 공부를 못했다.
그러니 고등학교를 갈때도 인문계는커녕 실업계도 제대로 된 곳을 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학교에서 진학을 위해 엄마를 모시고 오라고 하는데도 엄마대신 아버지가 오셨다. 선생님과 면담을 마치시고 아버지가 나오시더니 나를 중국집으로 데려가셔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시면 나에게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 너가 학교에서 노래를 잘하니 예술고등학교에 가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해? 대신 얼마남지 않았으니까 고등학교 입시때까지 학원도 가서 공부도 해야될 거 같아"
그 외에는 나에게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성적이 좋지 못해 실업계나 2차 3차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는 상황을…. 하지만 아버지는 일체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난 운좋게 예술고에 입학하고 대학까지도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후 무대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일본에 "사계"라는 극단에 뮤지컬배우로 오디션에 합격을 했다. 당연히 그곳에서 배우로서 삶이 이어지나 싶었지만 얼마후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렸더니 아버지는 당신이 하시던 일을 누군가 맡아줬으면 한다고 하셨다. 당시 형은 영국에서 학업을 하고 있었고 나도 내 나름대로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형은 그 곳에서 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내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난 오랫동안 노래하고 연기하고 무대 일 밖에 해본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경영을 해야 하는지 몰랐고 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다. 직원이 있어도 뭘 해야 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때 편찮은 몸으로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신 부탁은 3가지였다.
"첫 번째 항상 웃어라, 두 번째 인사를 잘해라, 마지막으로 아는척 하지마라."
이것 뿐이셨다. 어떻게 판매를 하고 경영을 해야하는지 그런 얘기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아버지께서 이 세 가지를 알려주지 않으셨다면 어쩔뻔했나' 싶다.
난 지금 비즈니스를 20년째 하고 있다. 내가 함께하고 있는 파트너분들과 우리 자녀들에게 항상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신 이 세가지를 말해준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다. 그 때도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나를 보며 웃어주셨다.
"아버지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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