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형제에 대한 사형선고

최경철 논설위원
최경철 논설위원

경력이 오래된 고위 법관을 얼마 전 만난 자리에서 사형을 선고해 본 적이 있는지 기자는 물어봤다. 그는 "없다"고 했다. "다행히"라는 말도 덧붙였다. 형사재판을 많이 해 봤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흉악범은 마주한 적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사형선고를 여러 차례 한 동료 판사를 본 적이 있다고도 그는 전했는데 판사도 사람인지라 쉽잖은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숱하게 많은 범죄자를 법정에서 마주했던 그는 사형을 선고해 보지는 않았지만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존치 입장이 사법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극악한 범죄자로부터 상상조차 하기 힘든 피해를 입은 채 고통받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직접 들어본다면 사형제 폐지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또 수사 기법이 굉장히 발전했고 강압수사가 사라졌기에 흉악범의 경우, 법원의 오심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형선고는 사법부가 내리지만 사형집행은 법무부가 한다. 그런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전국 교정 기관에 사형집행 시설을 점검하도록 지시하고 사형집행 시설이 있는 서울구치소로 사형수들이 이감됐다는 소식도 들려오자 잠복된 사형제 존폐 논란이 하루 한 건꼴로 관련 기사가 나올 정도로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는데 다시 사형집행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가 있다. 흉악범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사형선고를 받은 중범죄자들도 교정 시설 내에서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극악한 범죄의 모방 가능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장관도 지난 8월 30일 국회에 나와 "오랫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다 보니 일부 사형 확정자들이 교도관을 폭행하는 등 수형 행태 문란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형법은 물론, 여러 특별법에는 사형 규정을 명확하게 두고 있다. 그런데 "사형은 구시대 유물"이라는 식의 논리로는 흉악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어렵다. 국민 정서를 헤아려 법의 엄정함을 보여주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반인륜적 범죄를 막을 보루가 사형제도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국민 대다수의 법 감정이다. 사형제에 대한 사형선고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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