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책 읽을 결심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독서 모임 리더인 지인이 소설 추천을 부탁했다. 난감했다. 식당 추천보다 더 힘든 게 책 추천이다. 독서는 확고한 '개취'(개인 취향)의 영역이니. 내게 좋은 책이, 남에게도 좋을 수는 없다. 그래도 모처럼 부탁이니, 몇 권을 들이밀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일탈을 꿈꾸고 싶다면,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어보라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짧고 빼어난 문장을 맛보려면, 김훈의 '칼의 노래'를 펼쳐 보라고.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룬 소설을 원한다면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좋다고 했다. 현대사의 상흔이 펼쳐지지만, 실실 웃음이 날 것이라고 양념도 쳤다.

독서와 연관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서음(書淫), 간서치(看書癡), 서두(書蠹). 서생(書生), 서치(書癡). 모두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서음은 책에 깊이 빠진 사람, 간서치는 책만 보는 바보다. 서두는 책을 읽는 데만 열중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표현한 것이다. 서생은 가장 흔하지만 낮춰 보는 말이다. 서치는 미치광이라고 할 정도로 책에 빠져 있는 사람을 뜻한다. 송나라 주희(朱熹)는 '독서삼도'(讀書三到)를 강조했다.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이다. 안도는 눈으로 읽는 목독이다. 구도는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다. 심도는 마음에 새겨서 읽는 정독(精讀)을 뜻한다. 이들 가운데 심도가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책 읽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13세 이상의 평균 독서량은 감소세이다. 2011년 평균 12.8권, 2015년 9.3권, 2019년 7.3권, 2021년 7권이다. 청소년의 독서량은 연간 평균 11권. 대부분 학습용 도서로 추정된다. OECD가 2017년 발표한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은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이다. 우리나라는 0.8권으로 세계 최하위권(166위)이다.

나뭇잎이 가을 소리를 낸다. 햇살은 부드럽고, 바람은 살랑인다. 책장 넘기기에 좋은 계절이다. 독서의 효능을 설명하는 이론은 많다. 공부나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딱딱한 얘기는 접어 두자. 독서는 한가로운 소일거리요, 고독한 취향이다. 책은 고요의 세계, 미지의 세상, 현실 너머의 땅으로 안내한다. 이 가을, 책 읽을 결심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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