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 문화예술 활동을 총괄하는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이 지난 7일로 출범 1주년을 맞았다. 민선 8기 홍준표 대구시장 취임 후 산하기관 통폐합에 따라 대구시 출자‧출연기관인 대구문화재단,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관광재단과 시 사업소로 운영되던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미술관 등 6개 기관이 통합되면서 거대 조직이 탄생했다.
문예진흥원은 8개 본부로 조직을 재편해 행정 조직 통합에 따른 비용 절감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경영 효율화'와 '영역별 전문화'를 내걸었다. 그동안 문제가 된 지역 내 문화예술 카르텔 타파를 위해 본부장 공개 모집에 나서 타지의 외부 인사들이 대거 영입됐고, 단원 기량 문제를 일으킨 시립예술단의 혁신을 위해 올해 초부터 강도 높은 대책안을 내세웠다.
문예진흥원 출범 1년을 맞아 명과 암이 크게 갈린다는 게 지역 문화계의 평가다. 각 기관의 특색을 살린 신규사업으로 운영난을 겪던 일부 기관은 크게 성장했지만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한 본부별 직급 체제, 장기 공석상태인 대구미술관장 등 풀어야할 숙제는 여전하다. 출범 1년을 맞은 문예진흥원의 비전 및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박물관‧관광분야 전문화 성과
문예진흥원 출범을 통해 '경영 효율화'와 함께 한 축으로 내세운 '영역별 전문화'는 통합 이후 차츰 성과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물관운영본부와 관광본부다.
그동안 대구의 근대역사관, 방짜유기박물관, 향토역사관은 수년간 침체돼 있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을 뿐더러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년 공립박물관 평가 인증에서 대구근대역사관과 향토역사관은 시설, 조직, 운영 부분에서 낙제점을 받으면서 인증조차 받지 못했다.
이들 박물관은 문예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로 통합 운영 뒤 괄목할 성과를 냈다. 다수의 기획전시는 물론, 서울역사박물관과 교류전시, 열린 역사문화강좌 등을 통해 죽어가던 공립 박물관의 관람객 수는 급증했다. 문예진흥원에 따르면 통합 이후 올해 10월 1일까지 약 1년간 방문자수가 대구근대역사관은 6만7천여 명, 방짜유기박물관은 4만1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지역 문화계 인사 A씨는 "문예진흥원 출범 후 가장 큰 성과를 뽑으라면 '박물관 운영'이다. 그간 세 곳의 박물관은 학예사 등 전문 인력 부족으로 연구, 전시 관리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경직된 예산 집행으로 환경 개선도 어려웠다"며 "이런 곳에 6만여 명의 시민이 다녀간 건 대단한 일이다. 방짜유기박물관에서는 유물 78점을 기증도 받으며 박물관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본부의 성과도 뚜렷하다. 스마트 관광 통합 플랫폼 구현을 위해 모바일 앱 '대구트립'과 메타버스 앱인 '메타라이브'를 구축하면서 다운로드수 7만 회를 기록했다. 특히 대구의 대표 축제를 5월과 10월 집중 개최해 관광산업과 연계를 시켰고, 5월에 진행한 '판타지아 대구 페스타'를 통해 축제 연계 관광객 1만2천여 명이 대구를 찾았다.
◆조직 체제 개편은 여전히 '진행형'
문예진흥원의 일부 본부가 전문성 강화를 위해 힘을 쏟은 반면 성과가 미흡한 분야도 적잖다.
먼저 행정 조직 통합에 있어 가장 선제적인 해결이 필요했던 조직 내 '임금‧직급 체제 개편'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문예진흥원은 지난해 출범과 함께 진행한 조직 진단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직제 개편을 시도했지만, 일부 기관이 기관별 특성에 맞게 직원을 채용하면서 연봉과 직급이 제각각이어서 혼란이 일었다.
이를 위해 문예진흥원은 지난 2월 직원 임금 및 직제 개편을 위한 TF팀을 구성해 의견 수합에 나섰으나, 구성원끼리 의견 조율이 힘들거나 회의가 연기되는 등 협상안 도출이 지지부진하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5월 TF팀 협상안이 도출돼 문예진흥원 기획경영본부에 전달된 협상안을 놓고 개편 논의를 이어갔지만 여전히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
김정길 문예진흥원 원장은 "직원들 직급 조정 문제가 숙제로 남았다. 세차례를 걸쳐 전 직원을 상대로 개별 미팅도 진행하고 부서 설명회도 가졌다. 진흥원 내부 조정위원회까지 만들어 직급 조정으로 인해 차별을 받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는 중"이라며 "임금과 연봉은 현재 기준보다 낮아지는 일이 없도록 했다. 직급 조정 문제도 곧 마무리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조직 운영에 가장 기본이 되는 직급 개편 시스템이 늦어질수록 전문 인력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본부별 상이한 직급 체제로 직원들의 업무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같은 불만으로 문예진흥원 출범 1년만에 직원들이 노조 결성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문화계 B인사는 "본부별 직급 체제가 다르다 보니 연차가 높아도 직급은 더 낮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 내부 소통이 원활해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예술 허브가 되는데, 소통이 어렵고 상이한 직급 체제에 직원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며 "업무 환경이 악화하고 대우가 나빠지면 전문 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새로운 인력의 전문화를 위해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량 저하 문제로 대구시가 강력한 혁신안을 내세웠던 '대구시립예술단 평정 문제'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올해 초 대구시는 단원의 실기 평정을 강화하는 대책안을 내세웠지만 예술단 노조가 노동청에 진정을 넣으면서 시에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예술단의 평정 기준이 기존으로 되돌아가면서 문예진흥원은 자체적인 평정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고 평정 시 지난 5년 이내 평정에 사용된 곡 배제 등 실기 평정 평가 항목을 세분화한 새 대책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립예술단의 잦은 공연 등 기량을 높이는 실효성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개 모집을 거쳐 내정된 시립교향악단의 새로운 지휘자는 내정 한 달이 지났지만, 출근 일수 등 계약상 의견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서 아직 임명이 안 된 상태다.
문화계 C씨는 "공연이 많아지면 예술단원은 연습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기량 저하 문제를 가장 잘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이 공연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예술단 평정을 어떻게 한다는 것을 문서로 규정시킨다고 기량 향상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법이나 규정을 따지는 '문자 담론'에서 벗어나 공연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뚜렷한 목표와 비전 제시해야
늦어도 내년에는 문예진흥원의 뚜렷한 목표와 비전 수립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예진흥원의 지난 1년이 조직 정비와 산하 본부별 강점 강화 및 약점 보완에 집중되었다면 내년은 거대조직 출범의 당위성을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문예진흥원은 지난해 출범과 함께 중장기 발전전략과 이와 연계한 실적관리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5월 전략 및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연구용역에 들어갔고 이번 달 중으로 용역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문화계 D 인사는 "진흥원이 대구시의 문화예술의 컨트롤 타워로서, 문화행정 및 공연예술 분야에서 어떤 기능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내년 운영 방향은 뚜렷하면서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행정'이 예술을 밀어내 '주객전도'가 되지 않게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행정이 예술 분야에 대해 관리·감독을 강화하면 예술 사업을 펼치는 문예회관,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하우스, 미술관은 조직 내 업무 비효율이 벌어지고 피로감도 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관장석이 장기 공석인 대구미술관의 경우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화계 E인사는 "통합을 통해 경영효율화를 꾀하겠다고 했지만 내부 결재 단계가 더욱 많아져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은 출범 당시부터 있었다. 현재 진흥원은 기관별 화합보다는 각자도생한다는 분위기"라며 "정부의 예산 축소 기조에 따라 지역 순수예술이 위기에 처했다. 예술공연 예산 확보에 더 심혈을 기울어야 하고 행정이 예술의 멱살을 꽉 쥐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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