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는 지역 소멸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다. 출생도 취학도 이뤄지지 않는 지역은 일자리 부족, 고령화 등으로 청년이 줄었음을 뜻한다. 이는 곧 경제성장과 인구 유입 요인이 없다는 것으로,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으로 작용한다. 대구경북도 악순환 고리에 들어섰다. 10년 새 초·중고등학생이 13만 명 줄었고, 총 100개 학교가 문을 걸어 잠그기에 이르렀다. 아이가 떠난 곳에선 어른들 또한 생기를 잃고 있어 지역의 위기를 가늠케 했다.
◆올 3월 폐교 경정분교·구산분교…"전교생 모여도 축구·모둠수업 못해"
지난 5일 오전 8시 30분, 경북 영덕군 축산항초등학교 경정분교 앞은 등교 시간임에도 적막감만 감돌았다.
지난 3월 폐교한 이곳 정문에는 5m 길이의 쇠사슬이 걸려있었다. 그 너머로 잡초가 무성히 자란 운동장과 녹슨 미끄럼틀, 그네 등이 보였다. 아이들 발자취가 사라진 운동장 주변은 주민 텃밭이 돼 있었다.
거미줄 드리운 건물, 텅 빈 교실 칠판에는 졸업생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그리웠다. 사랑한다. 경정분교', '2007년도 졸업생 왔다 갑니다. 경정초 그립습니다' 등의 글귀가 보였다.
경정분교는 주민 488명이 사는 영덕군 축산면 경정리의 마지막 학교였다. 신입생이 줄었고, 한 교실에서 두 학년 이상 가르치는 복식 학급을 거쳐 주변 학교의 분교로 운영하다 끝내 문을 닫았다. 지난해까지 경정분교에 다니며 주 3회씩 본교인 축산항초등학교 수업을 받았던 학생 4명은 올해부터 통학버스를 타고 본교에 다닌다.
경정리 주민들은 경정분교의 폐교가 마을 소멸을 더 가속화했다고 지적했다. 흉물이 된 분교 터를 재활용해 주민 편의를 높이고 타 지역민을 불러 모으자는 주장도 내놓는다. 경정분교의 전신인 경정초교 6회 졸업생 이정옥(72) 씨는 "몇 년 전까지는 밤에 학교에서 운동하곤 했는데 폐교가 된 지금은 분위기가 스산해 낮에도 가기가 꺼려진다"며 "학교가 없으니 아이를 기르는 젊은 사람들도 이 마을에 와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민 유천택(66) 씨는 "저 큰 땅을 흉물로 둘 게 아니라 교육청과 주민이 협의해 캠핑장, 대형 식당 등 외지인을 유입할 수 있는 시설로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같은 날 오전, 지난 3월 폐교한 울진군 기성초등학교 구산분교 역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행인도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학교 앞에는 빈 집 두 채가 있었고, 낡은 슈퍼마켓 한 곳이 쓸쓸함을 더했다.
이 학교에 다니던 6학년과 3학년 남학생 2명은 올해부터 학교와 계약한 택시로 기성초 본교에 등교한다. 기성초의 다른 학생 대부분도 멀리 떨어진 집에서 이르면 오전 7시부터 통학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구산분교 재학 내내 동갑 친구가 없었다는 6학년 황태영(12) 군은 "입학한 뒤로 전교생이 5명을 넘긴 적이 없다. 운동장에서 축구 등 여러 활동을 못해 아쉬웠다"며 "같은 학년 친구 없이 학교에 다니다가 지금은 많은 친구들을 만나니 학교생활이 재밌어졌다"고 했다.
김대준(50) 전 구산분교장은 "교사 입장에선 소수의 아이들과 밀착 수업할 수 있었지만 그런 장점이 학교의 명운을 좌우하진 못했다. 폐교 조짐이 보이니 일대 취학연령 어린이는 모두 타 학교로 진학했고, 기존 학생도 모둠수업을 못하거나 많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등 단점이 많았다"고 했다.
구산분교는 앞서 졸업생들이 폐교 방지 구명운동을 펼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을 출신으로 총동문회 간부를 맡았던 김중환 구산리 어촌계장은 "신입생을 유치하려고 동문회에서 입학 장학금 200만원을 지급하는 사업도 펼쳤다. 돈이 문제는 아니다 보니 효과가 없었다"며 "일자리가 없어 마을이 점점 쇠퇴하는 게 실감 난다. 나중에는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구경북 폐교 일상화…학생도 10년 새 5명 중 1명 ↓
대구경북에서 학생 감소와 폐교는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청년 유출과 출생률 감소, 고령화 영향에 폐교가 일상화하는 모습이다. 지난 10년(2014~2023년) 간 대구경북 초·중·고교생 수 변화를 보면 2014년 62만7천587명에서 올해 49만3천961명으로 21.3%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에서는 2014년 31만9천972명에서 31만1천115명으로 24.6% 줄었다. 같은 기간 경북에서는 2014년 30만9천944명이던 학생이 올해 25만5천777명으로 17.8% 감소했다.
이 기간 지역 내 100곳의 학교가 줄줄이 폐교했다. 대구에서는 12개 학교(초등학교 2곳, 중학교 10곳)가 통폐합하거나 이전을 이유로 폐교했다.
가장 최근에는 대구 북구 교동중학교가 지난해를 끝으로 올 3월 폐교해 재학생들이 주변 학교로 전학했다. 앞서 2020년 3월에는 달서구 죽전중학교가 폐교했다. 경북에서는 분교장 폐지 사례까지 더해 대구보다 훨씬 많은 88개교(초등학교 41곳, 중학교 35곳, 고등학교 34곳)가 통폐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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