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팔공산은 환경사범의 쓰레기통이 아니다

신중언 사회부 기자

신중언 사회부 기자
신중언 사회부 기자

코는 눈보다 빨랐다. 지독한 악취가 마스크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분뇨와 화학약품 등이 뒤섞인 것 같은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냄새의 근원지는 거무죽죽한 흙무더기였다. 여기저기서 파리 떼가 들끓었고, 주변엔 검붉은 침출수가 고여 있었다.

지난달 18일 "이달 초부터 팔공산 자락의 하천 인근에 폐기물 수천t이 불법으로 매립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도착한 현장의 첫인상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확인한 참상이었다. 대구경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거듭난 곳에 또다시 '불법 폐기물'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다.

취재를 이어가며 악취와 불결함이 두 번째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방문 이후 며칠간 내린 비로 침출수 등이 제방 바로 아래에 있는 능성천으로 흘러들었다. 능성천 물길은 대구 시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공산정수장까지 연결된다. 이 상태로 방치하면 어떤 위험이 불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번 사태는 팔공산 토착민들의 마음에도 큰 상처를 냈다. 현장을 지켜보던 한 마을 주민은 "팔공산이 쓰레기통이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일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팔공산의 청정함과 평화로움은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폐기물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유령처럼 팔공산 일대를 떠돌아다니며 검게 죽은 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자부심도 짓밟혔다. 주민들은 "몇몇 브로커가 팔공산 내에 불법 매립을 알선해 주며 부당하게 돈을 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팔공산 일대를 '불법 폐기물 매립' 의혹으로 얼룩지게 한 토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현장을 살펴본 한 환경 전문가는 "주물공장에서 나온 폐주물사와 축산 분뇨를 섞어 매립한 것으로 보인다. 폐주물사가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분뇨 냄새로 덮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사를 진행한 성토 업체는 "승인받은 재활용 흙"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추석 연휴인 지난 1, 2일 이틀간 현장의 사토를 몰래 빼내 외부로 반출하려다 들통이 나기도 했다.

취재가 시작된 뒤, 대구 동구청과 환경청은 공사 중지를 명령하고 토양과 하천에 대해 성분 분석을 하는 등 후속 조치에 나섰다. 동구청은 위법성이 확인되면 원상복구를 명령하고 상황에 따라 고발 조치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관계 기관의 이 같은 조치는 '뒷북 행정'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 2020년 매일신문은 팔공산 일대에 만연했던 '농지 불법 성토' 행위를 파헤치는 탐사 보도를 이어 나갔다. 당시 동구청은 불법 성토 행위를 근절하겠다며 특별 단속팀을 꾸렸고, 일대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동구청은 재발 방지와 엄격한 처벌을 약속했지만, 고작 3년 만에 '공염불'이 됐다. 기자가 바라본 팔공산 일대는 여전히 행정의 감시망이 헐거운 '무법 지대' 같은 곳이었다. 오죽하면 성토 업체 관계자가 마을 주민들에게 "동구청과 언론은 내 선에서 정리가 가능하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내뱉겠는가.

불법은 공권력의 관심이 느슨해질 때 고개를 든다. 더군다나 폐기물 불법 매립은 자연에 불가역적인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범죄다. 동구청과 경찰은 임시방편식의 느슨한 태도가 아닌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처벌로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대구 시민들의 쉼터인 팔공산만큼은 환경 사범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