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김라떼다. 엣헴. "나 때(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추억 얘기라면 어디든 달려가지. 최근 내 귀를 쫑긋하게 만든 소식이 있었는데, 바로 추억의 '한컴타자'가 부활했다는 것!
아니, 이상하지 않아? 요즘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 자체에 익숙할 것 같은데 왜 일부러 한컴타자를 쓰는 걸까? 한번 MZ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자고!
◆타자 연습, 일부러 한다고?
MZ 친구들 얘기 듣기 전에, 내 말 안 듣고 가면 섭섭하지. 나 때는 말이야. 컴퓨터 켜면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났어. 밤에 잠 안 와서 컴퓨터나 할까 싶어 전원 켜는 순간 가족들은 물론이고 옆집, 앞집 다 깨는거지. 그렇다고 사실 컴퓨터로 할 건 많이 없었어. 지금은 노트북 펴는 순간 인터넷, 유튜브, OTT 등 다양한 즐길거리의 세계가 펼쳐지지만, 나 때는 게임이라고 해봐야 카드놀이나 지뢰 찾기, 아니면 페르시안 왕자나 돌아온 너구리가 전부였다고.
그 중에서도 가장 유익하고 시간 잘 가는 게임이 뭐였는지 알아? 바로 산성비였어. 그래. 한컴타자 놀이마당의 그 산성비 게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오는 단어들이 바다에 닿기 전에 빨리 타자를 쳐서 없애야 하는 그 게임 말이야! 벽돌처럼 쌓인 단어들을 순서대로 없애는 침략자 게임도 있었지. 이거 지면 나라 망한다는 심정으로 키보드 부서져라 집중했던 나와의 싸움…. 엄마는 항상 말씀하셨지. 공부를 좀 그렇게 해라.
그 때가 겨우 초등학생이었던 것 같아. 산성비로 내공을 쌓은 친구끼리 모여서 타자 연습을 하며 '몇 타'가 나오는지 시합도 하곤 했지. 한컴타자는 정말이지, 그 시절 '모르면 간첩'인 프로그램이었어.
근데 그거 알아? 요즘 잘파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와 2010년대 초반 이후에 태어난 알파세대의 합성어)는 의외로 컴퓨터 타자를 잘 못 친대.
나 때는 말이야. PC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학교에서 한글 파일로 연하장 만들기, 플로피디스크에 문서 저장하기와 같은 컴퓨터 사용 교육을 받았어. 근데 요즘은 그런 PC 교육이 코딩 등 소프트웨어 교육으로 바뀌었다나 뭐라나. 우리가 이미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교육받았다면, 이제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교육을 받는 셈이지.
그런 교육은 키보드보다 주로 마우스를 사용한다고 해. 그렇다보니 학생들이 '독수리 타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문서 제작 등 PC 기초 활용 방법, 심지어 이메일 아이디 만들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거지.
아무리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지만, 태블릿 PC 등 터치 형식의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고, 긴 글을 쓸 기회도 많이 없다보니 타자 치는 것에 능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
그래, 나 김라떼. 한컴타자가 뜬금 없이 부활한 첫번째 이유를 여기서 찾았다. 나처럼 아이들의 독수리 타법에 충격받은 부모들이 일부러 한컴타자 프로그램으로 키보드 치는 방법을 익히게 하고, 타자 연습을 시키기도 한대.
갓 대학생이 된 친구들도 마찬가지. 대학 입시 논술시험 칠 때까지만 해도 연필로 열심히 적었는데, 리포트는 그럴 수가 없으니 리포트 쓰려고 타자 연습부터 하는 친구들도 여럿 있나봐.
지금 세대가 여전히 키보드 치는 소리 가득한 직장에 취업한 이후에는 어떻게 하나, 좀 걱정됐는데 한컴타자로 일부러 연습한다고 하니 반갑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네. 나 때는 놀이의 하나였는데 말야.
◆힐링 취미로 떠오른 타자 연습
근데 말야, 나처럼 한컴타자의 낭만을 아는 M세대(198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 태어난 세대)는 요즘 한컴타자가 '힐링 취미' 중 하나래.
요즘 한컴타자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니 프로그램을 리뉴얼하면서 필사 기능을 도입한 게 M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나봐. 필사 코너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같은 한국 대표 시부터 한컴타자 검정의 원조격인 '메밀꽃 필 무렵' 등 소설, 수필뿐만 아니라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해외 소설도 영타로 따라 써볼 수 있게 해뒀어.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메밀꽃 필 무렵'을 클릭하니 푸르른 풀잎 위로 책을 펼쳐 놓은 듯한 배경이 등장했어. 세상에나, 소설과 어울리는 음악까지 흘러나오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이 부분을 따라 쓰고 나니 무척 마음에 들어서, 독서노트를 클릭해 형광펜으로 그어 저장했어. 또 띄어쓰기 표시가 확연하고 맞춤법까지 익힐 수 있어 저절로 국어 공부가 되는 느낌이랄까.
아, 한컴타자가 부활한 두번째 이유가 여기 있었네. 직접 해보니 알겠다. 바쁘고 치열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필사를 하는 시간 만큼은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뭔가에 몰두할 수 있거나 멍 때릴 수 있다는 것! 경쟁도 필요 없고, 잘해야 될 필요도 없으니 가볍게 집중하며 잡념을 잊게 되는 시간이 되더라고. 그래. 이만큼 건전하고 기품 있는 취미가 어디 있냐.
하지만 아쉽다는 얘기도 있어. 앞에 말했었지? 나 때는 말이야, 장문 연습하기 전에 산성비나 침략자로 손을 풀어줬었다고.
근데 개편한 한컴타자에는 예전 게임 대신 '워드 크러시 사가', '맞춤법 퀴즈'가 새로 생겼어. 워드 크러시 사가는 3개 이상 연결된 블록의 단어를 연속해서 입력해서 없애는 게임이고, 맞춤법 퀴즈는 말 그대로 2개 문장 중에 맞춤법이 맞는 문장을 고르는 게임이야. 음, 나름 재밌는 게임이었지만 나 김라떼는 산성비 시절의 낭만(?)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더라.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지?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다고?
뭐라고? 매일신문에서 한컴타자대회가 열렸다고? 눈감고도 키보드 치는 기자들의 타자대회라니. 내가 빠질 수 없지. 김라떼가 대회 현장에 달려가봤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대회장. 4명의 기자는 '떨린다', '잘 못할 것 같다'고 각자 방어막을 펼치며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어.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고 시작된 장문연습 대회. 아니 근데 다들 왜 생각보다 이렇게 버벅대는거야? 어릴 때 700타 쳤다고 한 사람들 어디 갔나 이거.
그도 그럴 것이, 생전 처음 보는 글이 랜덤으로 제공되네. 나 때는 말이야. 알지? 별 헤는 밤이나 메밀꽃 필 무렵, 청산도 하나만 주야장천 팠던 거. 중간에 잘못 치는 순간 바로 뒤로 가기 누르고 다시 시작했었잖아?
아무튼 글 내용은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제공한 김구,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얘기였어. 모든 연령대가 꼭 알아야 할, 유익한 내용이지.
500타에 그친 모 기자는 '남자현은 1872년 경북 안동 양반가에서 태어나/ 19살에 혼인하여 평범한 여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1896년 의병에 가담한 남편이 전사하면서'라는 숫자 쓰리콤보에 결국 좌절하고 말았어. 이거 정말 복불복이네.
그래서 글을 선택해서 타자 검정할 수 있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다시 시합을 붙기로 했어. 대회 종목으로 선택한 글은 애국가. 아, 애국가 하니까 생각난다. 나 때는 말이야. 대학생들이 한컴타자로 주어진 시간 안에 애국가를 4절까지 빨리 쳐야 상품을 탈 수 있는 TV 프로그램도 있었다고. 엣헴.
애국가라면 자신 있다던 참가자들.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표정이 굳는데….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탓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은 기자 4명의 평균 타수는 495. 부끄러움을 김라떼의 몫으로 돌린 이들은 오히려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손가락이 부은 탓이라는 변명을 하고는 사라졌어.
과연 승자는 누구였을까? MMM 인스타그램 계정(@maeil_mz_magazine)에서 확인해주시라! 김라떼는 또 다음 '나 때는 말이야~' 추억 얘기로 돌아올거야.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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