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가운 북풍에 나뭇잎이 떨어진다. 거리에 흩날리는 낙엽이 을씨년스럽다. 간혹 멋져 보일 때도 있다. 애수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때론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하나, 비라도 맞아 낙엽이 땅바닥에 찰싹 달라붙은 모습은 전쟁터에 뒹구는 송장처럼 처연하다. 퇴직한 남자를 '비에 젖은 낙엽'이라며 괄시한다고 한다. 괜스레 가슴이 뜨끔하다. 환갑을 넘긴 남정네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낙엽을 밟으며 은행나무 길을 걷는다. 철없는 반딧불이 눈물을 흘리고, 버티던 은행잎이 바람에 몸을 맡긴다. 올가을의 낙엽은 유달리 눈에 밟힌다. 심장이 멎는 듯하다. 낙엽은 나무의 살기 위한 버림이고, 몸을 썩혀 생명을 부양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슬퍼지는 것을 어이하랴.
#2. 월명사가 지은 '제망매가'가 입가에 맴돈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지는 잎같이/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는구나.' 같은 부모 밑에 난 형제자매라도 언젠간 죽기 마련이다. 죽는 덴 순서가 없다. 한 줄기 바람에 운명을 맡길 뿐이다. 현세의 삶이란 죽음에 이르는 한 과정이고, 사후 세계에 이르는 한 여정인 것을. 누이가 극락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이승에 남아 있는 오라버니를 오히려 안쓰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만 같다. 누이를 만나기 위해 열심히 도를 닦고자 하는 월명사의 다짐은 어쩌면 수도자의 불가피한 선택일 터다. 삶 자체가 하나의 잎사귀에 지나지 않는다는 허무감이 미생의 뇌리를 사로잡는다.
#3. 김광균의 '추일서정'은 가을 시의 압권이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가을과 낙엽에서 느끼는 애수와 허무가 회화적 감각으로 와닿는다. 기약도 없이 추락하는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낙엽은 여전히 구제 불능이다. 전통적으로 느끼는 낙엽에 대한 감상을 정치적 경제적 현상에서 찾아냈다. 상투적 감각을 낯설게 만들고 무력감을 증폭함으로써 종국적으로 색다른 감각적 정서를 일궈냈다. 익숙한 느낌을 생경한 소재를 소환해 신선한 감각을 살려내려고 시도하긴 했지만, 낙엽에 대한 기존 메타포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순 없다.
#4. 이효석은 마당에 흩어진 낙엽을 모아 태운다. 또 낙엽은 쌓일 터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현상에 충실하고 순리에 따를 뿐이다. 낙엽 타는 냄새에서 삶에 대한 실존을 깨닫는다.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 모으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낙엽을 태우면 좋아하는 커피 향을 맡을 수 있고, 그 커피 향을 맡고 있으면 '생활의 의욕'이 은근히 꿈틀거린다. 낙엽을 태우면서 상투적인 추억과 감상에서 벗어난 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혼이 떠난 육신을 묻고, 생활인의 자세로 회귀한다. 죽음의 화형식을 치르고서 삶의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낸다. 낙엽은 계절의 일상이다.
#5. 이해인은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 할지 깨우쳐 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보게 한다'고 '낙엽'을 노래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 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고 읊조린다. 낙엽은 죽음을 미리 알려 주는 현자다. 낙엽은 남은 시간을 소중히 쓰도록 깨닫게 해주고,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반면교사다. 낙엽에서 삶을 관조하는 수도자의 맑은 영혼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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