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36) 작가의 그림은 사진 속 풍경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족 여행차 베트남 무이네에서 찍은, 푸른 하늘과 붉은 사암이 멋지게 조합된 한 장의 풍경. 작가는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며 사진을 확대하고 또 확대한다. 풍경은 확대할수록 흩어지고 깨져 픽셀로 남고, 결국 본래의 풍경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채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우연히 사진을 보정하면서 확대를 하다가 지금 작품의 영감을 얻게 됐어요. 분명히 흰색 배경이었는데 확대를 하니 초록색, 파란색의 점들이 찍혀있는 걸 발견했죠. 내가 눈으로 보는 게 과연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그 이면의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뒤를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 키워드는 '편견의 해체와 재구성'이다. 그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부분의 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일정 부분만 보며 전체를 상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편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을 색다르게, 자세히 들여다보는 예술적 시도를 통해 그 이면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픽셀화된 풍경을 표현한 방법이 재밌다. 우리가 생각하는 네모난 픽셀이 아니라, 투명하고 구불구불한 선들을 수없이 겹쳐냈다. 선들이 겹쳐진 부분마다 미묘한 색이 쌓이며 선명하지만 흐릿한 듯, 흐릿하지만 선명한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채광이나 각도에 따라 작품 전체가 물결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확대한 사진의 일부를 들여다봤을 때, 부분이 담고 있는 형태나 색상이 다양해서 무척 놀랐었다. 과슈는 그러한 느낌을 담아내기에 알맞은 재료"라며 "중첩된 붓질의 겹을 고스란히 나타내보일 수 있을만큼 투명하면서도, 수채 물감보다 투명성이 낮아 묵직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종이도 일반 종이가 아니라 천의 성질이 50% 섞인 종이여서 물이 많이 닿아도 약하지 않다. 이러한 재료를 찾기까지 많은 실험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중에는 확대한 부분과 부분을 중첩한 새로운 시도도 엿보인다. 누군가가 알려주기 전에는 잘 발견할 수 없는 지점인데, 작가는 여기에도 '편견의 해체와 재구성'에 대한 작은 실험을 대입했다.
그는 "생각보다 우리는 눈으로 정확하게, 자세하게 보지 않는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편견은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관람객들이 내 작품을 통해 눈으로 보는 것 너머의 이면을 인지하고, 기존에 갖고 있는 편견을 재구성 또는 해체하는 경험을 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단순히 확대한 사진을 캡처해 과슈 드로잉으로 옮기는 지금의 작업에서 나아가, 좀 더 입체적으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작업을 해보려 합니다. 재료의 물성, '부분의 부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좀 더 연구해나갈 계획입니다."
박소현 작가의 개인전은 아트스페이스펄(대구 중구 명덕로 35길 26 2층)에서 오는 27일까지 이어진다. 053-651-6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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