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심청전을 짓다>(작 김정숙, 연출 권호성)는 삼국시대 백제의 도시 공주에서 개최된 제20회 고마나루 국제연극제에서 대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여성 극작가 전(2015)에서 초연되었고, 지난해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과 연기상을 받았으니, 인당수의 물길이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 셈이다.
◆ 고마나루 국제연극제 '9일간의 공연 여정'
오태근 집행위원장(충청남도 예총 회장, 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체제의 '고마나루 국제연극제'(예술감독 박정석)는 '고마나루 전국향토연극제'(2004)로 출발한 후 20년을 맞았다. 올해 고마나루 연극제는 '향토연극'에서 '국제연극제'로 전환된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해외작품을 초청하고 60여 편의 국내 지원작품 중 6개 작품을 선정해 공식 경연작품과 비경연 작품으로 나누어 국제연극제로 준비해왔다. 본래 8월 개최 예정이었던 고마나루 국제연극제는 장마 수해로 개막 일정이 연기되면서, 9월 25일에 개막식을 하고 10월 3일 한국연극예술학회(회장 심재민) 세미나와 폐막식을 끝으로 9일간의 공주에서의 공연 여정을 마무리했다.
'고마나루 국제연극제의 현황과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연극제의 역사와 성격, 국제연극제로의 방향성 모색 등 다양한 내용들이 논의되었다. 대학교수와 평론가, 축제예술감독들(예당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이승원, 연극평론가 황승경, 학연심 대표 곽수정, 전 성신여대 교수 김정숙, 김천가족극축제 집행위원장 노하룡, 동아방송대 교수 유경민)로 이루어진 발표자들은 두 시간 동안 발전적인 연극제 방안을 토론했다. 이승원 발제자는 '고마나루 국제연극제가 다른 연극제와의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충남의 유형적 가치 활용한 연극축제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고, '젊은 창작자들을 중심으로 창작콘텐츠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진단했다. 연극제의 마지막 날은 극발전소 301의 <전장의 시>(작 연출 정범철)가 경연 작품으로 공연되었고, 빅 퍼포먼스의 <씨름사절단>(작· 연출 김진만)이 축하 공연으로 진행되면서 폐막식을 마쳤다.
지역 연극제(축제)는 지자체 예산 지원으로 진행되기에,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향성이 유지되기 힘든 구조다. 예산 지원과 축제의 방향성이 예술감독 체제와 축제 운영조직의 독립된 구조로 고마나루 국제연극제가 개최되고 있다는 것은 발전적인 국제연극축제로 도약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오태근 집행위원장은 "앞으로 고마나루 국제연극제가 새로운 축제로 인식되고 변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동서양을 연결하는 문화 실크로드로 세계 굿페스티벌도 계획하고 있다"는 포부도 밝혔다. 개인적으로 3일 동안 연극제 역사관, 공연, 세미나를 경험해 보니, 20년 동안 공주에서 연극축제를 이끌어 온 시간은 모범적인 역사가 된 듯해 보였고, 연극에 대한 공주 시민들 관심도 높아 보였다. 이번에 관극한 작품은 연극집단 반의 <예외와 관습>(금상),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심청전을 짓다>(대상과 연출상), <전장의 시>(연기상) 정도인데, 이번 주 리뷰 대상 작품은 '인당수의 심청'으로 죽음과 권력을 짖고 그 관계를 잇는 <심청전을 짓다>이다.
◆ 인당수의 심청으로 죽음과 권력으로 짓다
고전의 현대화가 유행처럼 연극무대로 번지고 있지만,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심청전을 짓다>는 우리 것 그대로이면서도 심청이를 인당수로 몰아 넣은 가난과 죽음의 문제를 사회구조와 권력 등 우리의 문제로 풀어내고 있다. 극장 무대 전체가 대나무 숲이다. 중앙에는 산신을 모신 성황당(城隍堂)이 보인다. 비가 쏟아지는 날 노비 개동(최상민 분)이 우장(雨裝, 도롱이)으로 몸을 감싸고 평생 남의 종으로 살다 죽은 어미를 엎쳐 매고 들어서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 물이 거친 장대비로 폭우를 쏟아내듯 랩핑 기술과 조명이 무대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신단(神壇) 좌우 흐릿한 산신 탱화도 살아있는 듯 음산한 분위기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성황당 구릉지는(丘陵地) 첫 장면 전경부터 동양화처럼 연출의 미장센이 극에 구도를 받치고 우리 전통과 고전 미학을 살려내고 있다.
노비 개동은 성황당 돌단 밑으로 죽은 자신의 어미(이희연 분)를 밀쳐 넣는다. 심청이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 장대비는 심청이가 인당수 물을 토해내는 듯 쏟아지고 성황당에는 심청이의 혼령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비(물)의 설정은 극적인 분위기를 위해 다층적인 의미로 환기된다.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의 한과 죽음인 듯하다. 심봉사를 위해 공양미 삼백석 제물로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은 유교적인 효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동시대 무대로 환생한 심청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으로 재해석된다. '가난해 죽은 죄, 죽을 수밖에 없는 죄'는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 부재한 사회구조와 양극화되고 있는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한편, 제도적 보호장치의 붕괴로 변주되어 심청을 죽음에 이르게 한 우리(이웃)의 문제로 투영되고 있다. 한강의 물길이 초고속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의 산업화의 상징이라면, 심청전의 인당수는 희망이 거세된 죽음의 물길이다. 이 틈으로 고전인 심청전도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된다.
연극적 상상으로 허구가 '지어지는' 이 지점부터 작가는 연극적 메타포로 비틀고 극적인 설정으로 우회한다. 심청이의 가난을 '우리의 문제'로 돌리고 심청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이웃들의 연대적인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심청이를 인당수에 데리고 간 사람, 죽음을 말리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심청이 죽음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성황당에 제사상을 마련해 심청이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제를 올리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되는 것도 심청이의 죽음이 사회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맥락이다. 성황당은 죽은 자와 산 자들이 뒤섞여 시공간을 초월하기도 하고 죽은 자가 돌아와 원한의 복수도 하고 극적으로 비밀을 푸는 역할을 하는 장치로 설정된다. 그런데 <심청전을 짓다>의 시공간은 연극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심청이의 죽음에 한과 업까지 씌워 이야기를 차곡차곡 지어낸다. 작가는 고전 서사에서 한 발 더 들어간다. 심청이의 한이 퍼붓는 비처럼 내리는 그날, 성황당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꽃상여를 태워 보낼 어미의 무덤을 짓지 못해 성황당 밑으로 어머니의 시체를 밀어 넣은 노비 개동이와 비를 피하려고 들어선 사대부 세도가의 양반 신문성과 선달 오명준도 그들 중 하나이다. 이제 성황당은 권력을 쥔 세도가, 양반, 양민, 노비 등 인간 사회구조의 축소판이 된다. <심청전>은 새로운 이야기로 전환된다.
작가는 심청이 혼령과 동일화되는 극 중 인물 아씨(이예진 분)를 설정하는데 신내림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열병(熱病)에 시달리는 그녀의 운명이 기구하다. 세도가에게 출가한 아씨는 남편 될 사람이 죽자, 죽은 자와 식을 올린 후 열병에 시달린다. '팔자가 사나워 남편까지 죽인 년'이라며 스스로 죽어 돌아오면 '열녀비'를 세워주겠다는 가문의 종용에 종녀 하나를 데리고 죽음길을 떠나다 심청이 제사를 지내는 중인 성황당에 들어서게 된다. <심청전을 짓다>는 이들을 심청이의 제사상 앞에 불교의 '업(業)'과 '연(緣)'으로 묶어 죽음의 한(恨)을 씻겨낸다. 권력자, 가난한 자, 억울하게 죽음에 내몰린 자, 신분과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양민, 저승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심청이의 한까지 묶이는데 이들의 삶과 죽음이 모이는 지점은 세도가의 권력이며 심청의 죽음을 막지 못한 우리들이다. 죽음을 종용당하는 아씨도, 심청의 죽음을 막지 못한 마을 사람들도, 권력이 유연하게 작동하고 사회시스템이 안정적인 살만한 세상에서라면 제사상도 열병을 얻어 굿판을 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공연은 세도가를 중심으로 국가 권력 이미지를 형성하고, 노비와 양민이 세도가의 권위에 도전할 때는 칼날을 뽑아 폭력으로 다스리는 등 권력의 위계질서를 험악하게 보여준다. 극 후반 세도가도 제사상 심청이의 사연(이야기)에 빠지면서 심청이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성황당의 제사상은 심청이를 향한 속죄의 굿판이 되며 반전 분위기가 형성된다. 심청이의 혼령을 소환해 망자의 혼령을 달래는 굿판에서, 심청의 한은 판소리 이야기가 되고 귀덕이네(박옥출 분)는 심청의 이야기를 구연동화처럼 읽어내며 몰입감을 높여준다. 심청의 어린 시절부터 인당수에 팔려 간 사연까지 이야기를 짓고 늘어놓는데, 그 소리 리듬이 판소리 같고 배우의 연기는 심청이의 고된 삶이자 내면을 절절히 구현한다.
◆ 심청의 죽음 '우리의 문제'로 짓다
작가는 극 중 인물을 통해 극적인 반전으로 극 중 분위기를 한 번 더 비튼다. 심청의 한을 열쇠처럼 쥐고 있는 인물이 아씨인데, 그녀는 심청이의 혼령이 씌어 제사상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세도가 양반들을 향해 "저들이 죽였어, 저들이 죽였어 (중략) 요거 차려놓고 죄를 벗겠다고, 어림도 없어! 살려내! 왜 죽였어?" 라며 몸을 비틀고 악을 쓰며 한과 저주의 감정을 토해낸다. 하지만 남경 상인이 "내가 파도에 던져 버렸다"며 속죄의 눈물을 떨구는 대목에서 아씨는 '울지 말라며' 죄를 달랜다. 세도가는 죽음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듯 아씨를 살려 보려 하고, 이때 노비 개동은 자신의 어미를 꽃상여를 태울 수 있는 제안을 한다. 들어보자. "노비로 태어나 고생만 똥을 싸게 하고 꽃가마 한 번 못타 보고 죽었으니 인저 저승 가거든 좋은 곳에 태어나라고 우리 엄니도 꽃상여 한 번 타보게 해주십시오. 아씨 대신에 죽었다 하고 모시고 가믄 설마 시체 보자 하겄습니까." 이미 죽은 자신의 어미를 아씨의 죽음처럼 만들면, 아씨는 남편을 위해 죽은 열녀가 되고, 그 덕에 제 어미는 대감집 꽃상여를 타고 땅에 묻힐 수 있다는 계책이다. 사대부 양반들에게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아씨 죽음을 뒤집는 건 가문의 문제이기도 한 그들은 권력에 죽어간 자들에게 화해와 용서의 손길을 내밀고 심청이 죽음도 씻겨낸다. 아씨를 거짓 죽음으로 살리고, 평생 양반집 종으로 살다가 죽어간 개동 어미도 꽃상여에 태우기 위해, 남경 상인은 심청의 죽음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씨를 잘 모시겠다고 하면서 성황당 앞은 권력도, 죽음도, 신분도 걷어내는 살아갈 만한 세상 풍경으로 변한다.
심청도 아씨를 살려내는 성황당에 모인 인간들에게 위로받아서일까. 요동치는 인당수같던 장대비도 고요해지고 무대는 죽음의 구름을 걷어내고 살아갈 만한 미래 세상을 밝히는 듯 별들이 구릉 지대에 동화 같은 풍경으로 촘촘히 박힌다. 성황당 앞마당은 비로소 인간들이 살아갈 만한 풍경의 세상으로 전환된다. 연극이 이렇게 끝나면 심심했을까. 마지막까지 양반을 향한 조롱의 풍자 정신을 날리고 이어간다. 세도가와 동행한 선달은 양반 나리를 숙부(叔父)라 부르며 은밀한 제안을 하고 양반 나리는 그에게 마지못해 벼슬자리를 제안한다. 우리의 문제로 시민들이 인식해야 할 사회적 죽음에 책임지는 정치권력자들이 부재한 세상을 향해 조롱의 칼날을 보내면서 공연은 끝나나 했는데, 공연은 귀덕(김수영 분)이 지은 사설 판소리를 들려준다. "지가 심청이 이야기를 지었어요. 심청이 좋아하는 곤드레밥 짓듯 고슬고슬 맛이 나게 지었어요. 제목은 '심청전'이어요." <심청전을 짓다>는 공간의 이미지 감각이 돋보이면서도 배우들의 연기 기량이 좋은 작품이다. 양반 세도가 역할을 맡은 신문성은 TV, 영화, 연극의 모든 장르에서 통용될 수 있는 캐릭터를 보여줄 만큼 감각이 탁월한 배우다. 귀덕이네 박옥출, 귀덕이 김수영, 남경 상인 정래석도 감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심청전을 짓다>는 고전 미학을 무대에 살려내면서도 심청이의 죽음을 재해석한 이야기로 동시대를 향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작가가 짓는 이야기, 연출의 구도, 세 박자가 모두 들어 있는 작품이다. 시체 역할을 한 이희연처럼 배역의 높낮이를 떠나 배우들이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니 심청이의 인당수는 죽음의 물에서 살아갈 만한 희망의 물길로 살아난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과 김정숙 작가는.
극단 모시는 사람들은 김정숙 작, 연출가의 <반쪽이전>으로 1989년도에 창단 공연을 한 뒤 올해로 34년이 된 국내 대표적인 극단이다. 창단 초기 아동, 청소년연극에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을 발표해왔으며 뮤지컬 <블루사이공> (1996)이후부터 다양한 장르의 우수한 작품들을 발표하고 공연해오고 있다. 특히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2003), <숙영낭자전을 읽다>(2013), <황야의 물고기>(2008), <피카소, 돈년, 두보> (1998) ,<가시고기>(2008)와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화려한 휴가> 아동극<몽실언니> (2005) 등 수십 편의 작품들이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대표작품들이다. 창단부터 다양한 장르의 우수한 창작극을 개발해 오고 있다. 작가 선욱현이 극단 모시는 사람들 단원이자 작, 연출가로 활동했으며 권호성 상임 연출은 한국연출가협회 올해의 연출가상(2020), 백상예술대상 대상, 작품상, 희곡상을 받은 <블루사이공>을 연출했다.
김정숙 극단 모시는 사람들 대표는 극단 에저또에 입단해(1982), < 마지막 키스를 당신께>(작 윌리엄인지) 연출로 데뷔하면서부터 다양한 작품을 쓰고 연출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국내 연출가이자 극작가이다. 창작 뮤지컬<우리로 서는 소리>(1990) <꿈꾸는 기차>(1992) <화려한 휴가>(2010) <대왕의 꿈>(2014) <블루사이공>(2019)을 썼으며 악극 <비 내리는 고모령>, 드라마<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2003), <숙영낭자전을 읽다>(2013) 50여 편의 희곡과 다수의 아동극을 쓰고 수많은 작품을 연출해왔다.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으로 동아연극상 희곡 작가상(2003)과 대한민국 국회 대상 올해의 연극상(2011), 한국희곡협회 올해의 희곡극작가상(2003)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심청전을 짓다> 희곡집(평민사)을 비롯해 대표적인 희곡들이 출판되어 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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