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라이더, 경성을 누비다

김기철 지음/ ㈜시공사 펴냄

영화
영화 '해어화'에 나오는 일제시대 경성거리 세트장. 인터넷 갈무리

우리는 식민지 조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수탈과 저항으로 점철된 근대사로만 기억하고 있을까. 헐벗어 하루하루 근간히 삶을 지탱하는 민초들 속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독립 운동가들과 이를 철저하게 억압하는 일본 순사들과 친일파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를 흐릿한 잿빛으로만 보던 우리의 시야를 크게 확대해 100년 전 조선인이 가졌을 기호, 동경과 욕망, 환호와 한숨이 오늘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1938년 7월 3일, 한 청년의 음독자살 기사가 실렸다. 검시한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주식에 손을 댄 28세 청년이 2천여원의 손해를 본 것을 비관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1936년 6월 7일, 신문에 실린 채만식의 수필에는 금을 얻고자 집 벽까지 헐은 사람 이야기가 소개됐다. 1930년대 내내 세계를 지배한 대공황의 여파는 조선에까지 미쳤다.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반면 금값은 폭등했고, 이는 전 조선의 황금광 열풍으로 이어졌다.

1922년, 청년 문사와 사귀다 결별을 한 강향란이 단발을 하자 그는 유명 인사가 됐다. 1920년대 신문과 잡지는 앞다퉈 '단발 찬반 논쟁'을 다뤘다. 단발은 무분별한 서양 문화 수입이었고 '허영심의 발로였으며 사회적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 어느새 여학교의 교복과 같이 취급될 정도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식민지 조선의 인구가 약 2천만 명이던 시절, 경성에서는 '산아제한'을 둘러싼 토론회가 수시로 열리기도 했다.

1927년 봄, 경성 한복판 서소문의 '자신귀굴'을 르포한 기사가 실렸다. 아편도 문제였지만 아편을 정제한 '모루히네'(모르핀) 중독자를 일컫는 자신귀가 골칫거리였다. 1929년, 일본인 시마 도쿠조에게 경성 신당리 토지를 특혜 분양한 사건은 경성부윤이 나서서 사과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식민지라는 암흑 시절임에도 신문은 권력형 특혜 분양 의혹을 쏟아내며 경성부를 조롱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도시 풍경의 많은 부분은 100년 전에 등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철도, 버스, 카페, 백화점, 극장, 영화관 등은 불과 1세기 전에 첫 모습을 드러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조선일보 입사 후 사료연구실장 겸 문화부 학술전문기자로 있다. 그는 100년 전 신문, 잡지를 밑천삼아 조선닷컴에 '모던 경성'을 연재하고 있다. 이 책은 100년여 전 시대상을 신문과 잡지의 기사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65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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