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신호와 소음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2001년 9·11 테러에 앞서 미국 정보기관에는 비행기가 자살 공격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줄을 이었다. 열성적인 알카에다 요원이었던 자카리아스 무사위의 수상한 행적이 대표적이다. 그는 단독 비행은 한 차례도 해보지 않았음에도 보잉 747기의 시뮬레이션 조종 교습을 받으려 했다. 이를 포함해 알카에다의 테러 목표가 미국 영토 안에 있다는 첩보가 넘쳐났지만 모두 무시됐다.

유대교 속죄일(욤 키푸르)에 일어났다고 해서 '욤 키푸르 전쟁'으로 불리는 제4차 중동전(1973년 10월 6~25일) 직전 양상도 같았다. 1971년부터 이집트는 전쟁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공언했고 1973년 봄에는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이를 재확인했다.

엄포가 아니었다. 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 근처로 병력과 장비를 이동해 광범위한 진지를 구축했다. 국내에서는 대대적인 헌혈 운동이 전개됐고, 민방위 요원들이 소집됐다. 이를 포착한 이스라엘 정보 요원들은 이집트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잇따라 보고했으나 군 정보기관 아만(Aman)은 믿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신호'(signal)와 '소음'(noise)을 구분하기 어려운 첩보의 모호성 때문이다.

미국이 진주만 기습을 당한 이유를 분석한 '진주만, 경고와 판단'(1962)의 저자 로버타 윌스테트의 정의에 따르면 신호는 '적의 의도에 대해 유용한 사실을 알려주는 정보의 한 조각', 소음은 '서로 경쟁하는 신호들이 내는 소리로, 신호로 착각하게 하는 무작위 패턴'이다.

노련한 정보 분석가도 소음을 신호로, 신호를 소음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소음을 신호로 착각해 그때마다 경보를 울려대면 국민이 경보에 둔감해지고, 신호를 소음으로 착각하면 기습 공격에 무방비로 당하게 된다. 이를 미국 정치학자 리처드 K. 베츠는 이렇게 정리했다. "경보 체계를 민감하게 하면 기습 공격을 당할 위험은 낮아지지만 오(誤)경보의 확률이 높아지며 오경보는 다시 민감도를 떨어뜨린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정보기관을 보유하고도 하마스의 기습에 속절없이 당한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는 이런 첩보의 모호성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대비돼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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