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유한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붙들어 놓고자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곧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가는 것들의 기록이자 시대의 증명인 셈이다. 나아가 우리는 사진을 통해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짚어보기도 하고 생활상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갤러리 팔조(대구 수성구 용학로 145-3)에서 열리고 있는 빅토르안·황인모 2인전 '시간 위에 박제된 초상(Immutable Portrait)'은 인물들의 삶과 정체성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 전시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인 빅토르안(76) 작가는 40년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진 기자로 재직해왔고, 현재 프리랜서 사진 작가로 활동 중이다. 작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고려인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한국, 일본 등 많은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사진으로 찍고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빅토르안 작가는 "내 작업은 크게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나뉘어진다"며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우, 농사 등 그들의 생활상이 담긴 작업을 통해 고려인들의 문화와 정체성, 성실함 같은 면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주변인들의 초상(肖像)을 찍은 '생체인식여권' 시리즈를 선보였다. 얼굴을 클로즈업한 대형 흑백 사진들을 나열했다. 사진 속 인물들은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가감 없이 드러난 그들의 주름, 그리고 사진 위에 찍힌 지문이다. 작가는 "그것들이 바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주름은 세월이 흐르면서 겪어온 경험들이 남긴 정직한 흔적이고, 지문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숨길 수 없는 생물학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황인모(48) 작가는 인물과 함께 주변의 생활상이 잘 드러난 '민중의 초상' 시리즈 작품을 보여준다. 포항에서 태어난 그는 경일대 사진영상학과와 영남대 조형대학원(사진예술전공)을 졸업했으며,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로 활동 중이다.
민중의 초상은 그가 2005년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대구, 경산, 청도, 영덕, 고령 등 영남 지역에 사는 평범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황 작가는 "어렸을 적 농촌에 살아서 익숙했던 풍경들이 급격히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함께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며 저마다 소중한 얘기를 안고 있음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날마다 사라져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물 뿐만 아니라 인물의 생활환경을 고스란히 사진 속에 담아낸다. 수돗가가 있는 옛 마당, 더 이상 쓰지 않는 아궁이 옆에 놓인 가스렌지, 가족사진 액자가 빼곡히 걸린 벽면 등 정감 있는 모습들을 세세하게 들여보게 된다.
작가는 "가장 역동의 시기를 살았고, 생활문화가 급격히 바뀌는 시기를 겪은 세대들이었기에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분들의 모습을 사진으로만 남기지 않고, 인생 얘기도 함께 모아 책으로 남겼다. 이번 사진전들을 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053-781-6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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