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천 출생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 별세…향년 92세 (종합)

‘묘법’ 연작으로 국내 추상미술 발전 선구적 역할
올해 초 SNS로 암 투병 사실 밝혀
“한국 미술계의 거목” 미술계 애도 잇따라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사진)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연합뉴스

'한국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박 화백은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1960년대부터 모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1963년 파리비엔날레, 1975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1986~1990년)과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년) 등을 지냈으며 국민훈장 석류장(1984), 옥관문화훈장(1994), 은관문화훈장(2011), 금관문화훈장(2021) 등을 받았고, 제64회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한국 현대 추상미술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1973년부터 '묘법(ecriture)' 연작을 선보여왔다. 초창기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뒤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 긋기를 반복하다, 중기에는 캔버스에 한지를 여러 겹 바르고 마르기 전에 긁어낸 선 작품을 발표했다. 묘법 후기에는 여러 겹 덧바른 한지를 막대 등으로 밀어내는 작업을 해오며 '단색화의 거장'으로 인정 받아왔다.

2018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976년 묘법 작품이 200만 달러(약 25억원)에 판매되며 화제가 됐으며, 그의 작품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등 전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던 그는 지난 2월, SNS를 통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밝혔다.

그는 당시 게시글을 통해 "내 나이 아흔둘, 당장 죽어도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을텐데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한다.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중략)사는 것은 충분했는데,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라며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중략)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했다.

고인은 투병 중에도 작업뿐 아니라 SNS 등에서 다양한 세대들과 소통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고, 지난달 열린 프리즈 서울에도 휠체어를 타고 찾아 직접 관람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 8월부터는 부산 조현화랑 달맞이점, 해운대점에서 개인전(~11월 12일)을 열어왔다. 고인은 지난달 가족과 함께 부산을 찾아 전시장을 돌아보기도 했다.

박 화백의 별세에 미술계와 그를 사랑해온 미술 애호가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박 화백은 단색화의 거장이자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었다"며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치열하게 이룬 화업은 한국 미술사에서 영원히 가치 있게 빛날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또한 그가 지난달 22일 마지막으로 남긴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400개가 넘는 추모 댓글이 달렸고, 작가들도 잇따라 애도를 표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한편 그의 이름을 딴 제주 박서보미술관은 내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고인은 지난 3월 열린 기공식에서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속에 응어리진 게 풀리고 치유받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박서보미술관은 고인이 2019년 세운 비영리 재단법인인 기지재단이 운영할 예정이다. 기지재단은 박 화백의 작품 관리와 아카이브 구축, 영상·출판 콘텐츠 제작, 젊은 창작자 지원 등을 해오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명숙 씨와 아들 승조·승호 씨, 딸 승숙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조문 시간 오전 7시~오후 10시)다.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파크, 발인은 17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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