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그날따라 남편은 혼자 자겠다고 하며 옆방으로 갔다. 언제나 아이들을 중간에 껴 함께 자던 남편이었는데…. 아이들을 재운 뒤 가겠다고 하니 웃으면서 저리 말하곤 방문을 닫았다. 남편이 고집을 부리면 꺾을 수 없단 걸 알기에 내버려 뒀지만,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에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새벽 4시쯤 눈이 저절로 떠졌다. 옆방 문틈 새로 푸르스름한 빛과 축구 경기 해설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것이 2시간 뒤 세상을 떠날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엄했지만 가정엔 충실했던 남편… 수면 중 심장마비로 허망하게 떠나
대학생이 돼서도 통금 때문에 밤 10시 안에 부랴부랴 귀가. 임숙현(가명·52) 씨는 그런 엄한 아버지 아래서 자라왔다. 보수적, 철두철미, 완벽주의... 모두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22살에 전문대를 졸업한 뒤엔 지원도 칼같이 끊겼다. 그래서 액세서리·화장품 매장 판매원, 건축회사 경리, 재봉학원 보조교사 등 어려서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 한창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던 25살, 친구로부터 5살 많은 남편을 소개받았다. 태권도장 관장이었던 그는 덩치도 우락부락하고, 성격도 호탕했다. 엄한 집안에서 자라와 내성적인 자신과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 점이 끌렸던 것 같다.
숙현 씨는 1년간 연애 끝에 그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연애 기간엔 발견하지 못했던 남편의 여러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남편은 아버지처럼 보수적, 철두철미, 완벽주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남자였다. 짜 놓은 걸레도 하나하나 각 잡아 개어 놓게 하고, 팬티 다림질까지 시켰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자식만큼은 끔찍이 여기는, 인간적인 면도 있는 사람이었다. 태권도장과 병행하던 사업 때문에 지역 출장이 잦았지만, 첫째 재민(가명·23)이 태어난 뒤 아들과 함께 자야 한다며 늦은 밤이라도 꼭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홀로 모든 걸 떠안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15살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 뒤 장남인 그에게 가해진 압박들이 그렇게 만든 걸 테다. 시누이를 위해 빚보증을 서주다 억울하게 빚을 지고,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도 그는 자기 할 일을 했다. 그렇게 일만 하던 그는 39살에 수면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끝까지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5살 재민이는 한동안 실어증에 걸렸다. 숙현 씨도 넋 나간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야만 하는 사건이 들이닥쳐 왔다. 둘째 희민(가명·21)에게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3살이 지나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등 희민은 보통 아이들보다 여러 면에서 더뎠다. 그저 늦는 건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5살이 됐을 때 희민은 자폐 1급 판정을 받았다.
◆건강 나빠지는데 자폐 판정 받은 둘째 아들까지 점점 폭력적으로
희민을 학교에 보낼 나이가 되자 육아 난이도도 수직 상승했다. 희민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학교 사서교사로부터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같은 학년의 지적장애 학생 2명이 희민을 도서실 구석으로 몰고 간 뒤 마구 때렸다고 했다. 희민이 자랄수록 이런 일은 더 잦아졌다. 자폐 특성 중 하나인 반향어(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따라 말하는 것)로 인해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아 자주 다툼에 휘말렸고, 숙현 씨도 자주 학교로 불려 가곤 했다. 이 때문에 짧은 아르바이트도 곧잘 그만둬야 했다. 고2 이후론 폭력적인 행동도 늘어났다. 지난주엔 희민에게 맞아 팔에 멍이 들기도 했다. 지난 월요일 저녁 숙현 씨는 방 안에서 희민에게 교우관계 관련 조언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희민은 "집을 나간다"고 소리치며 박차고 일어나 현관문을 열려 했고, 나가지 못하게 붙잡자, 희민은 그 손을 뿌리치며 숙현 씨에 주먹질을 했다.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희민을 위해서라도 치료를 늘려야 하는데…. 현실은 더 각박하게 변하고 있다. 장애 치료에 쓰도록 보건복지부에서 매달 나오던 22만원 상당의 바우처 지원이 지난 8월부로 끊겼다. 생일이 지나며 희민이가 성인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래 다녔던 치료센터를 2곳에서 1곳으로 줄이고, 약 타러 보름에 한 번씩 갔던 한의원도 최근에 끊어야 했다. 교육청에서 매달 나오는 12만원도 희민이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다. 지금도 기초생활수급비로 간신히 버티는 실정에 치료를 줄이면 줄였지 더 늘릴 순 없을 것이다.
희민을 보살펴야 하는 숙현 씨 본인의 육체적·정신적 상태도 온전치 않아 더욱더 큰일이다. 우선, 숙현 씨는 허리가 선천적으로 약해 수시로 복대를 찬 채로 생활하고 있다. 여기에 1년 전부터 '방아쇠수지(손가락이 잘 안 펴지고 굽혀지지 않는 증상)증후군'까지 생겨 양손 5개 손가락에 붕대를 매고 있다. 비슷한 시기 요실금, 절박염, 빈뇨 등 비뇨기 관련 문제도 여럿 겹쳐 복용 중인 약 종류만 10개 가까이 돼 늘 약에 취해 있기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다. 정신적으로는 3년 전부터 공황장애가 왔고, 이와 함께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등 기억력 감퇴 증상도 찾아왔다. 물건을 서랍에 넣어두면 잊어버리기 일쑤라 모든 물건은 다 꺼내 늘여 놓거나, 벽 같은 곳에 걸어 놓는다. 물건을 샀다는 걸 잊어 같은 물건을 또 사는 바람에 그냥 방치해둔 물건도 많다. 필요 없는 물건은 버리면 되지만 강박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주욱 월세로 살고 있는 11평짜리 투룸. 오늘도 온갖 잡동사니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숙현 씨의 집이었다. 자기 집에서도 맘 편히 앉아 있지 못하는 숙현 씨는 밖에서 조금이라도 소리가 날 때마다 문에 기댄 채 기척을 살폈다. 무엇이 그렇게 불안한 걸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갑작스러운 불행이 또다시 들이닥칠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막을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경계 태세를 늦추지 못하는 숙현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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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가득한 집에서 본인도 거동 불편하고 시력 점점 떨어지는데 왜소증 걸린 첫째 딸과 가와사키병 앓고 있는 둘째 딸까지 있는 고미홍 씨에게 2,838만원 전달
남편 외도와 가정 소홀로 홀로 어렵게 자매를 키워왔는데 첫째 딸은 왜소증에 걸리고 둘째 딸은 가와사키병을 앓아 앞길이 막막한 고미홍 씨(매일신문 9월 26일자 10면)에게 2천838만8천840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에스엘(주) 200만원 ▷권오영 2만원 ▷신종욱 2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괴롭힘 못 이기고 보육원 탈출해 어린 나이부터 온갖 고생하다 겨우 가정 이뤘으나 아픈 장모님 돌보고 지적장애 아내·조카 보살피느라 고달픈 조민상 씨에게 2,632만원 성금
어린 나이부터 온갖 고생을 하다 겨우 가정을 이뤘으나 아픈 장모님과 지적장애 아내·조카를 보살피느라 고달픈 조민상(매일신문 10월 10일자 10면) 씨에게 53개 단체, 187명의 독자가 2천632만8천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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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나눔624' '장재영(10일자기사' '주님사랑' 각 10만원 ▷'나노김동현' 7만원 ▷'이경분♡감사' '피땀눈물(로지스올)' 각 5만원 ▷'.' '고나연(조민상사' '어려운시기돕기' '어려운시기돕기' 각 3만원 ▷'석희석주' '예수님 사랑' '지영' 각 2만원 ▷'윤성 아빠' 1만1천원 ▷'반규민1009' '안지오안시우' '지현이동환이' '청명(고나배정)' '힘내세요!' 각 1만원 ▷'성금' '수민' '애독자' 각 5천원 ▷'지성이' '채영이' 각 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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