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택배 배송지에서 숨진 60대 택배기사의 죽음에 대해 유가족이 "노조와 정치권은 고인을 함부로 말아 달라"고 호소한지 하루 만에 택배노조가 재차 "해당 택배기사는 과로사로 숨졌다"고 나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숨진 택배기사 A씨에 대해 국과수에서는 사망 원인을 '심장 비대 질병'이라는 구두의견을 경찰에 전달했고, 의학계에서 "기저질환과 유전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과로사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도 '명백한 과로사'로 몰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주요 포털 커뮤니티 등에서 "택배노조가 유족의 의견을 무시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과로사' 택배노조 주장에 의학계 일각 "과로사 보기 어려워"
15일 물류업계에 따르면, 택배노조는 이날 오전 국회 앞에서 "지난 13일 새벽에 사망한 쿠팡 택배기사는 명백한 '과로사"라고 나섰다. 노조는 지난 13일 A씨가 숨진지 10시간 만에 "과로사로 추정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불과 3일 만에 또다시 A씨가 "과로사로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 13일 오전 4시쯤 택배기사 A씨는 경기 군포시의 한 배송지에서 숨졌고, "고혈압 등 지병이 있었다"는 유족 진술을 토대로 국과수에 부검을 맡겼다. 국과수 부검 결과 A씨의 심장은 정상치의 2배 이상으로 비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적인 심장의 크기는 300g이고, 숨진 A씨의 심장은 800g 가량 커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부검결과 A씨가 심근경색을 앓고 있었고 혈관이 전반적으로 막혀 있었다"며 "사망 원인을 질환으로 보고 내사로 사건을 종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A씨는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인 CLS와 위탁 계약한 물류 업체 소속으로 약 1년간 일해왔으며, 독립적으로 업무시간과 양을 정할 수 있는 개인 사업자 신분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날 "A씨가 숨진 이유는 전형적인 과로사이자 뇌심혈관 질환 증상"이라며 "부검 결과 과로사에 대한 추정이 틀리지 않았음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쿠팡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허위 사실을 주장하는 택배노조에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쿠팡측은 "고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달라는 유가족의 호소, 심장 비대로 인한 국과수의 1차 부검 소견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악의적 비난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쿠팡에 따르면 A씨는 주 평균 52시간 일했고, 평균 배송 물량 또한 통상적인 수준을 넘지 않았다.
과연 택배노조는 A씨를 과로사로 단정할 수 있을까. 의학계 일각에선 "심장비대증으로 심장이 2배 이상 커지려면 유전적 요인과 기저질환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아 현재 단계에서 단순 과로사로 보기 어렵다"는 노조 주장과 배치되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A대 심장내과 교수는 "통상적인 심장비대 환자는 심장이 10~15% 정도 커져있어야 하는데, A씨의 경우 심장이 정상 수준의 2배 이상인 800g라는 점에서 단순히 고혈압을 넘어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유전성 '비후성 심근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며 "아울러 심근경색을 앓아왔다는 것은 오랜 기간 심부전 기저질환의 영향으로 심장비대가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부검 결과가 나와야 겠지만, 단순 1년 근무로 인한 과로사로 단정할 수 없고 수십년간의 유전질환과 다년간의 기저질환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다른 서울시내 주요 전문의 사이에서도 "과로사로 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고혈압 등 기저질환과 유전적 요인 등이 다양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한 부검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국과수 구두 소견만으로 '과로사'로 단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장비대증이 진행된 수준이 심각하고, 무엇보다 정식 부검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버지 죽음에 함부로 말하지 말라" 유족 의견 묵살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아달라"는 유가족의 입장에 아랑곳 없이 또 다시 '과로사'로 A씨의 죽음을 기자회견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노조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지난 13일 A씨가 숨진지 10시간 만에 국회 앞에서 '과로사로 추정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논란이 확산되자 A씨 유족은 15일 전문배송업체 B물산에 "노조와 정치권이 고인 죽음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A씨의 아들은 "아버님은 어머님과 자녀에게 성실한 가장이셨다"며 "아버님의 장례 중에도 불구하고 노조와 정치권이 함부로 말하고 언론에 유포되는 것은 고인을 잘 보내 드려야 하는 가족에게 아픔"이라고 문자를 B물산에 보냈다. 그러면서 "노조와 정치권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장례 중에 제가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언론보도 등을) 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주요 포털 커뮤니티에선 "노조가 유가족을 두번 죽이고 있다"는 의견이 쇄도하는 상태다. "유가족이 고인의 죽음을 노조와 정치권이 악용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또 다시 선동에 나서고 있다" "숨진 A씨의 사인이 오랜 지병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마녀사냥식 추궁이 바람직하지 않다" "A씨의 사인은 직업에서 얻은 질병이 아니다"는 반응이 속출한 것이다.
한 누리꾼은 "개인사업자인 A씨에게 누가 일을 강요한 것도 아닌데다 오랜 기간 악화된 질병에서 비롯됐다" "며 "유족의 호소에도 민주당과 민주노총은 고인의 죽음을 악용하고 있는데 진짜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다.
한 대학 언론광고학과 교수는 "택배노조의 목적 달성을 위해 고인을 욕보이는 행태"라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다 숨진 고인의 죽음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그동안 CJ대한통운, 로젠택배, 롯데택배 등에서 택배기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나올때마다 '과로사'라고 몰아간 사례가 존재해왔다.
택배노조는 그동안 택배기사 사망 사건이 나올 때마다 '과로사'로 몰아간 사례가 존재해왔다. 지난 2022년 6월 CJ대한통운의 대리점 소속 배송기사 사망 때도 노조는 "고인은 평소 건강했지만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를 배송했다"며 과로사 의혹을 일으켰다.
그러나 CJ대한통운측은 "해당 기사는 건강검진에서 동맥경화, 혈압, 당뇨 의심 판정을 받았고 배송물량은 평균 택배기사보다 17% 적고, 주당 작업시간은 55시간 안팎이었다"고 반박했다. 지난 2020년 말 롯데택배 한 대리점 소속 배송기사 사망 사건에서도 노조는 "고인은 하루 14~15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롯데는 "평균 오후 7시간 정도에 퇴근했고 업무 과다로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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