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한 강단사학이 가장 중시하는 해는 서기 369년이라고 말했다. 서기 369년에 야마토왜(大和倭)가 가야를 점령해서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생각'하는 해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한국 강단사학은 369년이 없으면 한국고대사를 서술하지 못할 것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들이 근거로 삼는 369년은 일본서기 '신공(神功) 49년'조의 기록이다. 그런데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는 서기로 환산하면 249년이지 369년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강단사학계는 일제히 249년에 120년을 더해서 369년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도 그 생각을 추종해서 한국 강단사학계의 '정설로' 만든 것이다.
1990년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신편 한국사(전 60권)'이 현재까지 한국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 견해를 담고 있다. 그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권오영이 국고로 쓴 제 6권이 '삼국의 정치와 사회Ⅱ-백제'인데, "일본서기 신공황후 섭정 49년(369)조에는 백제·신라·가야·왜가 관련된 중대한 사건이 서술되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권오영은 "(신공 49년은) 일본서기의 연대로는 249년이지만 신공기(神功紀)의 연대는 120년 내려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석을 달았다. 신공 49년은 249년이지만 120년을 더해서 369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 강단사학계의 논리는 한 단락은 물론 한 문장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수두룩하다가 말했다. 권오영은 "한때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하는 데에 이용된 근거자료 중의 하나였던 (일본서기 '신공 49년'조의)이 기사는 심하게 왜곡되어 있음이 분명하지만 정벌의 주체를 왜가 아니라 백제로 치환할 경우 역사적인 진실을 일부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고 말하고 있다. 권오영은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는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 그 기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이어져야 하는데 '정벌의 주체를 왜가 아니라 백제로 치환'하면 사실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는 무슨 내용인가?
그러면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는 무슨 내용인지 살펴보자. 일본서기는 신공 9년, 즉 서기 209년에 신라·고구려·백제가 모두 야마토왜에 항복했다고 말하고 있다. 세 나라가 모두 야마토왜에 신하국이 되어서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고 해마다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공 46년, 즉 서기 246년에 신라와 백제 두 나라가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제의 조공품이 신라에 비해서 품질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백제에게 물어보니 백제에서 말하기를 신라에서 백제의 조공품을 빼앗아다가 신라의 조공품인 것처럼 바쳤다는 것이다. 야마토왜의 조정에서 조사해보니 백제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난 야마토왜가 신라 정벌에 나섰다는 것이다.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49년 봄 3월, 황전별(荒田別:아라타와케)·녹아별(鹿我別:카가와케)를 장군으로 삼고, 구저(久氐)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건너가서, 탁순국에 이르러 장차 신라를 습격하려 했다. 이때 혹자가, "군사 숫자가 적으니 신라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다시 사백(沙白)・개로(蓋盧)에게 (신공황후께) 상표를 올려서 군사를 더 청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신공황후가) 목라근자(木羅斤資)와 사사노궤(沙沙奴跪)(두 사람은 그 성씨를 알 수 없다.
다만 목라근자는 백제 장수이다)에게 정병을 주어 사백·개로와 함께 보냈다. 모두 탁순(卓淳)에 집결해서 신라를 공격해서 깨트리고, 이로 인해 비자발(比自㶱)·남가라(南加羅)·탁국(㖨國)·안라(安羅)·다라(多羅)·탁순(卓淳)·가라(加羅) 7국을 평정했다(일본서기 신공(神功:진구) 49년)」
굳이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이 기사의 모순점은 금방 느낄 수 있다. 먼저 공격당한 나라는 신라인데 망한 나라는 가야라는 것이다. 바로 이 기사를 메이지 이래 일본과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서기 369년에 가야가 멸망하고 임나일본부가 들어선 사건이라고 해석해왔다. 그래서 서론에서는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본론에서는 식민사관을 반복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학계를 거의 100% 장악한 한국 역사학계가 369년을 거의 신앙수준으로 높여왔다.
이 기사의 전제는 무엇인가? 신공 9년에 신라·고구려·백제가 모두 야마토왜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년 조공을 바쳤는데 백제의 조공품을 신라에서 빼앗아 바쳤기 때문에 야마토왜가 신공 49년에 신라를 정벌했다는 것이다.
◆'신공 9년'조는 거짓인데 사실이라는 학자들
그런데 현재 한국은 물론 일본의 식민사학자들도 신라·고구려·백제가 왜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리 제국주의 식민사학이라도 209년이든, 여기에 120년을 더한 329년이든 신라·고구려·백제가 왜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우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도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일본과 한국 역사학계의 전가의 보도인 분절론(分節論)이 등장한다.
일본서기 '신공 9년'조는 사실이 아니지만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런 정신병적 사고가 역사학 외피를 쓰고 횡행하는 나라는 한국과 한국 재점령을 꿈꾸는 일본 극우파 역사학자들밖에 없다.
딱한 것은 정작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신공기'에 120년을 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서기 '신공 43년조'는 "'위지(魏志)'에서 말하기를 '정시(正始) 4년(243)에 왜왕이 다시 사신으로 대부 이성자, 액야약 등 8명을 보내 헌상했다[魏志云 正始四年 倭王復遣使大夫伊聲者掖耶約等八人上獻]'"라고 쓰고 있다. 일본서기 '신공기'를 쓰면서 그 43년조에 이 시기는 '위지'의 정시 4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지는 진(晉)의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의 위나라 역사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삼국지라고 말하는 것은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의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이고 진수의 삼국지가 위·촉·오가 각축하던 삼국시대의 역사인데, 그 중 위나라에 대한 부분을 '위지'라고 부른다.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720년에 일본서기를 편찬하면서 '신공 43년'을 위나라 정시(正始) 4년이라고 말했는데 이때는 서기 243년이다.
따라서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신공 49년'을 서기 249년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1300여년 후의 일본과 한국 학자들이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틀렸다. 신공 49년은 120년을 더해서 369년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우기는 것이다.
일본서기가 신공 49년을 서기 249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한국 재점령을 꿈꾸는 일본극우파 역사학자들이 120년을 끌어올려 369년이라고 조작하고 있는 것을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이 마치 노비들이 무조건 주인을 따르듯 추종하고 있는 것을 정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가야를 왜의 식민지로 조작하기 위한 역사조작
일본서기에서 인용한 위지(魏志)란 구체적으로는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열전'의 왜(倭)조를 뜻한다. 여기에 "정시 4년 왜왕이 다시 사신으로 대부 이형기, 액사구 등 8인을 파견해서 생구(生口:포로), 왜의 비단, 강청겸, 솜옷, 비단, 베, 단목, 부, 단궁시 등을 바쳤다. 액사구 등은 솔선중랑장 등의 인수를 일률적으로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때가 신공 43년이고 서기로는 243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서기 '신공 49'년의 사건을 249년이라고 해석하면 임나일본부설을 주창할 수 없으니 120년 끌어올려 369년의 일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369년에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우기는 것이다.
만약 삼국사기는 물론 중국 25사의 어떤 역사서에 기록된 특정 기사를 120년 끌어올려 해석해야 한다면 이런 역사서를 사료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석하려면 다른 사료를 인용해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사료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러니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어거지뿐이다. 임나일본부설은 서기 369년부터 562년까지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했다는 내용으로 가야가 곧 임나라는 것인데, 이 369년설이 무너지면 임나일본부설의 기초가 무너지기 때문에 일본서기 '신공 49년'에 120년을 끌어올려 369년의 일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를 역사학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모든 길은 임나일본부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가야사복원이 임나일본부사 복원으로 드러나면서 많은 역사시민운동가들이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문화재청에서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하면서 경남 합천은 임나7국의 하나인 '다라국'이고, 전북 남원은 야마토왜의 식민지 '기문국'이라고 써서 신청하고 나아가 가야를 서기 3세기에 건국한 나라라고 써서 신청했다.
많은 역사시민운동가들이 유네스크에 사료를 보내면서 설득한 결과 유네스코에서 '다라국'과 '기문국'을 삭제하고 가야는 서기 1세기에 건국한 나라라고 고치는 것을 승인했다. 유네스코 인사들이 한국 문화재청에서 가야가 임나라는 일본 제국주의 논리로 신청한 것이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를 보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기에 '다라국'과 '기문국'을 삭제하고 가야는 서기 1세기에 건국한 나라라고 고치는 것을 승인했다. 언제까지 학자들과 역사관련 국가기관들이 국고로 역사를 팔아먹고 시민들이 자비로 역사를 되찾아오는 싸움이 계속되어야 하는가를 유네스크 가야고분군 사태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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