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도토리 도둑 유감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주말 저녁 공원 근처에서 산책을 하다가 도토리 껍질이 수북이 떨어진 것을 봤다. 안사람은 혹시 도토리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허리를 숙여 자세히 살폈다. 드물게 도토리 알맹이가 보였다. "조금 있으면 겨울인데, 다람쥐·청설모도 먹을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손으로 집으려는 안사람을 말렸다. 미처 챙기지 못해 남은 도토리들은 다람쥐와 청설모가 다시 와 수확해 갔을 것이다. 그 귀여운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수확의 계절 가을을 맞아 등산을 하면서 우연히 마주친 도토리나 밤송이 덕분에 '가을의 멋'을 한층 더 크게 느끼고 즐긴 경험은 웬만하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게다가 청설모나 다람쥐와 마주치면 환호성이 저절로 터진다. 기념품 삼아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도토리와 밤을 무심코 던져 주게 된다. 놀라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와 도토리를 주워 가는 다람쥐를 보면 왠지 흐뭇해진다.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에 "인간의 탐욕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이는 계절이라 이 시기에는 산에 오기가 무섭다"는 민원 글이 올라왔다. 겨울철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어야 할 도토리와 밤, 잣 등을 싹쓸이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임산물 불법 채취로 형사 입건된 사람만 2017년 118명, 2018년 152명, 2019년 220명, 2020년 233명, 2021년 232명이었다. 식물 무단 채취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입산 금지 구역에 들어가기만 해도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경기도동물구조관리협회는 5년 전부터 가을마다 수도권 야산을 돌며 단속을 벌인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을 것이다.

밀렵 단속만큼이나 도토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밤·도토리는 야생동물이 겨울을 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식입니다. 먹을 게 없어지면 멧돼지가 민가로 내려와요. 결국엔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도토리 도둑(?)은 대개 중·노년층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 도토리묵 등을 해 먹던 추억 탓에 별다른 죄의식이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그러나 이제 먹고살 만한 세상이다. 야생동물의 식량을 약탈하는 것은 비인도적 범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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