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 박서보 화백 마지막 개인전, 12월 3일까지 부산 조현화랑서

달맞이점·해운대점서 총 25점 전시
후기 연필 묘법·디지털 작품 선보여

고 박서보 화백. 조현화랑 제공
고 박서보 화백. 조현화랑 제공
Ecriture No. 13-20, 2020, Relief print with Korean Hanji Paper and Hand-Coloring, 170x130cm. 조현화랑 제공
Ecriture No. 13-20, 2020, Relief print with Korean Hanji Paper and Hand-Coloring, 170x130cm. 조현화랑 제공

고(故) 박서보 화백의 마지막 개인전이 조현화랑 달맞이점과 해운대점에서 12월 3일까지 열리고 있다.

1991년 박서보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인연을 맺고, 이후 총 14번의 전시를 기획해온 조현화랑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2020년대를 기점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후기 연필 묘법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또한 디지털로 고인의 묘법을 재해석한 비디오 작품이 1천호에 달하는 연보라 묘법 대작과 더불어 몰입감 있는 관객 참여형으로 전시된다.

이외에도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세라믹 묘법 6점, 대형 판화 작품 4점 등 총 25점이 두 공간에 펼쳐진다.

조현화랑 달맞이점의 돌계단을 올라 커다란 철문을 열면, 평소 전시실과는 사뭇 다른 어두운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넓이 5.5m, 높이 2.5m의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화면은 묘법의 강렬한 색감과 입체감 있는 질감을 초고해상도로 확대해 움직임을 부여한 디지털 작품이다. 평소 눈으로 관찰할 수 없었던 세밀한 디테일을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박 화백의 손자 박지환이 제작한 것.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연보라의 오묘한 빛을 따라 걷다보면, 디지털 작품의 원형이 전시돼있다. 1천호에 달하는 연보라 묘법은 2010년에 제작된 것으로, 캔버스 표면에 올려져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내는 과정에서 눌리고 밀리면서 선과 색을 안으로 흡수하는 한지의 물성이 연보라색과 어우러져 비움을 통한 채움의 정신성을 묵묵히 발현한다. 손의 흔적을 덮는 규칙적인 선이 만들어내는 절제에 담긴 색감이 자연의 자기 치유 능력을 발휘하듯 소멸하고 소생하길 반복하며 기운을 흡수하고 또 발산한다.

조현화랑 관계자는 "처음 만나는 디지털 작품은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하던 작가가 디지털 문명을 대면하며 느낀 공포심에 대한 돌파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색채가 다음 세대를 통해 디지털 화면으로 재해석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조현화랑 달맞이점 전시장 전경. 조현화랑 제공
조현화랑 달맞이점 전시장 전경. 조현화랑 제공

전시는 화랑 내부의 계단을 통해 2층에서 이어진다. 고요한 푸른 색감으로 칠해진 커다란 전시 공간에는 박서보가 1986년 중단했다가 최근 재개한 신작 연필 묘법 12점이 나란히 진열돼있다. 밝은 파스텔 톤의 색감 위로 반복과 평행의 리듬감 있는 신체성을 드러내는 연필 묘법에 대해 박 화백은 "무목적성으로 무한반복하며 나를 비우는 작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현화랑 관계자는 "오랜 시간의 수련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화폭에 담아 조율하는 박서보의 묘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 없이 변화하며 확장되는 힘을 느끼게 한다"며 "이번 전시는 70여 년이 넘는 화업 동안 끊이지 않는 탐구와 실험 정신으로 생의 마지막 날까지 묘법 시리즈를 지속해온 박 화백의 지치지 않는 수행의 결과물을 목격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 화백은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가족과 함께 부산을 방문해 개인전이 열리는 조현화랑 전시장을 돌아봤다. 박 화백은 지난달 22일 인스타그램에 부산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하루 사이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가을인가. 바닷 바위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사뭇 차가워지고. 내년에도 이 바람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는 글을 게시했고, 이는 그의 마지막 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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