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기차·배터리 산업 '자국 우선주의' 확산…복잡한 한국의 셈법

中 해외시장 공략에 국가별 제재 본격화
국내 보조금 지급 기준 개편 목소리

지난 12일 경기 여주시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지난 12일 경기 여주시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기아 EV 데이' 행사에서 카림 하비브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장이 차량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전시된 차량은 왼쪽부터 EV9, EV3 콘셉트, EV5, EV4 콘셉트, EV6. 연합뉴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중국 전기차·배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핵심 신산업을 둘러싼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심화되고 있다.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점한 한국 전기차 업계도 최근 둔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7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올해 3분기 기준 국가별 전기차 관련 주요 정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자동차업체 보호를 위해 저가 중국산 전기차 수입에 대해 징벌적 관세를 검토하고 있다.

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 대상에는 BYD를 비롯한 중국 업체는 물론 테슬라, BMW 등 중국 현지에 생산 라인을 둔 글로벌 완성차 기업도 포함된다. EU집행위원회는 경쟁법 위반 여부를 조사한 뒤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원자재와 배터리 가격, 특혜 대출, 저렴한 부지 제공 등을 고려해 표준세율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국가별 제재도 본격화되는 추세다. 프랑스는 중국산 전기차를 견제하기 위한 보조금 개편안을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사실상 유럽 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는 모두 보조금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역시 전기차 제조·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일본은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자국 내 배터리 및 반도체 생산량에 비례해 법인세 부담을 줄이는 '전략물자 생산 기반 세제' 정책을 추진한다. 이에 중국 정부도 수입 부품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놓으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자국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강화되면서, 일각에선 우리 정부도 보조금 지급 기준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KAMA는 "중국 기업이 전기 승용차가 출시에 성공하면,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이 절대적인 국내 전기차 시장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특히, 전기차 시장에서도 가격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 업계가 주도하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한 보급형 전기차 출시가 늘었다.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 우리 세금으로 중국 자동차 업계를 배를 불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특정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로 갈등이 발생할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내수 시장이 작고 수출 지향형인 경제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우려도 있다"면서 "직접적 제재가 아닌 리사이클링, 탄소배출 등 환경 관련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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