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극장의 실험적 대안공간 축제로 개최되고 있는 '서울창작공간연극축제'가 26일(목)까지 개최되고 있다. 축제의 특징은 특정 무대에서 재현되는 표현 형식을 탈피해 일상적 장소(공간)의 날 것의 환경을 감각할 수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창작 작품은 자연적인 공간을 활용하여 극을 유도하고 작품의 다양한 형식과 표현 방식을 보여준다. 고정된 무대구조와 무대장치, 연극적 기술 등 극장을 탈피하자는 것이 축제 의도인 만큼, 연극적 환영을 걷어 내도 자연 공간에서 발화되는 극적인 상상은 실험적으로 확장된다. '서울창작공간 연극축제'의 무대 공간은 재개관한 서울연극센터, 망원동(살라1), 갈산도서관(신정동), 안도프로젝트스튜디오(문래동)에 마련되었다. 2011년 1회가 시작되어 올해 19회로 개최되고 있는 이 연극축제는 공동창작을 포함, 10개 단체 9개 작품이 릴레이로 공연되고 있다. <시터>(그리너리), <두 사람>(극단 하), <어쩌다>(드란드란), <이별의 방>(극단 해봄, 보통현상), <미스터리, 미스터리>(바디뮤직코리아), <거침없이 도서관 여행>(제이앤케이), <만 그루>(창작집단 문, 창작집단 곰 공동작품)의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21일과 22일에는 <독백콘서트_시즌2 배우>(공연예술제작소 호밀), <박테리아 이분법>(극단 생존자프로젝트) 두 작품이 서울연극센터 스튜디오(3층)에서 공연된다. 26일에는 합평회와 폐막식을 끝으로 서울창작공간 연극축제의 여정을 마치게 된다. <어쩌다>(극단 드란드란, 연출 신영은)는 3개의 짧은 희곡을 묶은 옴니버스 작품으로 두 배우가 극을 진행한다. 극단 드란드란은 희곡 <마주보는 집>으로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2022)된 신영은 작가(연출)가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30대가 중심이 된 젊은 창작단체다. <달콤한 기억>(2022)이 아르코 대학로예술극장 신춘문예 단막극전 '봄 작가, 겨울 무대'에 선정되면서 작가와 연출의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국경시장>(2017)으로 창단 공연을 올린 후, <연극파라다이스 호텔>, <미치지 않고서야>(2018), <나의 이웃>(2021), <유난히 긴 식탁>(2022), <차(茶)의 시간>, <지아>(2023) 등을 쓰고 연출하며 '우리 소설 낭독공연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신영은 작가의 희곡은 삶의 일상성과 사회적 트라우마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 살아보니, '어쩌다'의 세상
<어쩌다>의 공간은 서울연극센터 1층 내부다. 공간의 특성을 그대로 살리고 오브제를 활용하여 서울창작공연 연극축제의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다. 연극 분야 책들이 비치되어 있고 개방형 카페처럼 가로 1미터 정도의 알루미늄 탁자와 소파가 놓여 휴식 공간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앙은 강의가 가능한 구조로 되어있고 빔프로젝트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 세미나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인다. 우측 입구 방향은 개폐식 폴딩 유리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문을 열면 외부 테라스와 연결되는 구조로 혜화역 4번 출구 방향으로 이어진다. 연극은 무료 공연으로 30-40석의 간이 객석은 꽉 채워져 관객들의 이번 축제와 공연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다. 3개의 짧은 에피소드가 옴니버스로 30분 정도 공연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 '어쩌다 어른'(박새미, 이유리)은 좌측 편 탁자에서 두 인물의 대화로 시작된다. 어른의 세상을 꿈꾸는 동화 같은 구성이면서도 어쩌다 어른이 되어 버려 세상 밖에서 살아가야 할 '어른 됨'의 두려운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두 인물의 상실된 내면과 자아(自我)가 맞닿아 있다.
두 인물에게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어른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다. "어른이 되면 명확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불편한 것들도, 잘 몰랐던 것들도, 어려웠던 것들도." 라는 유리의 대사에 녹아있는 것처럼, 어쩌다 어른이 되어 맞닥뜨린 세상은 미래와 희망을 담보할 수 없는 전쟁터 같은 현실이다. 생소하고도 설레는 어른 됨은 두려움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의 어른 되기는 치열한 생존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기에 두 사람의 행복이란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어른으로' 스스로 성장할 수 없기에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름을 작명소에서 '어른'으로 바꿀 만큼 부적 같은 자기최면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어쩌다 여행'은 여행 작가인 '윤'과 친구 '진아'(문서윤, 권순미)의 이야기다. 마치 여행 이야기를 통한 셀프 치유 방식을 제안하는 것 같다. 진정한 행복은 여행과 일상 속에 있는 것처럼.
윤이 3일간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 온 뒤 친구의 죽음이 여행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면서 극은 시작된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살아가야 할 삶은 여행처럼 느껴지고 소소한 일상과 여행처럼 동네를 누비던 기억의 대화들로 채워진다. 두 인물에게 여행이란 삶과 죽음의 시간에서의 치유의 방식이다. 윤은 여행 한 번 제대로 가기 힘든 진아에게 동네 구석구석을 여행해 볼 것을 제안한다. "다들 일하느라 여행 한번 가기가 쉽지 않잖아. (중략) 잠깐이라도 자기를 좀 들여다보라고, 아니, 그런 거창한 거 아니라 좀 쉬라고. 좀 웃고. 좀 환기하고." 여행을 떠날 수 없을 만큼 바쁜 일상에서 윤과 진아는 좋아하는 것 말하기로 삶의 행복을 상상하고, 좋아하는 것 말하기로 여행을 떠는 것으로 설정된다. 만화책, 솜사탕, 다이어리, 흙냄새, 살구색, 일요일 아침, 국수 말이, 소품, 물김치 등 행복은 일상의 시시콜콜함들 아닐까. 어쩌면 그것들을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의 여행을 떠나기 전에 동네구석구석도 누벼보고 좋아했던 것을 소환하는 셀프 힐링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 어쩌다 승부, 두 남자의 이야기
세 번째 에피소드는 두 남성(장준우, 윤상철)이 등장하는 '어쩌다 승부'(원제는 '자살하는 남자')다. 대역배우,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20대 상현과 계약직을 전전하며 11개월째 무직인 기선이 자살을 시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공연은 서울연극센터의 내외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극이 시작되면 개폐식 폴딩 유리문이 개방된다. 폴딩 유리문 하단이 한강 다리가 되는 식이다. 외부 테라스 방향에서 인물이 등장하며 진행되는데, 자연공간을 연극적으로 활용한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한강 다리에 모인 두 인물은 자살할 수밖에 없는 각자의 사연을 쏟아놓는다. 영화배우 외모라 할 수 없는 상현은 배우를 꿈꾸며 대학을 휴학하고 대학로에 나온 지 7년차 배우다. 공연 한 편을 끝내고 그가 받았던 출연료는 1만 3천원이었고, 7년이 지나도 출연료는 별 차이가 없다. 배우 인생을 아르바이트로 버티며, 택배 배달, 공사판 일용직, 심야 대리운전을 해도 달라질 것 없는 삶에 현실이다. 급기야 달리는 차 안에서 뒷좌석 문을 연 손님 때문에 사고를 내게 된다. 대리운전 과실로 벌금 600만원을 내야 하는 상현이 인생의 운전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이 마지막 한강다리다.
정규직이 될 수 없는 인생에 빚만 지고, 집세는 밀려 집주인의 퇴거 통보를 받는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오포 세대, 비정규직, 배우로 살아가는 대학로의 현실을 풍자하면서도 상현이가 여자 친구가 있다는 말에 기선은 "아..씨발..나보다 낫네, 인생"으로 받아치는 대사에 눈물겨운 웃음이 터진다. 두 인물은 주머니를 뒤져 몇 천 원을 찾아낸다. 이들은 이를 악물고 오늘도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 최후의 만찬을 마시겠다며 한강 다리를 내려와 소주 집으로 향한다. 세 편의 에피소드는 희망이 거세된 삶을 여행으로 치유하기도 하고 치열한 생존 게임을 희생당하는 세상임에도 여전히 '희망행복' 기다리는 한국 사회의 시간을 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어쩌다 어른'과 '어쩌다 여행'의 전개에서 대사보다 공간 활용에 더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입체적으로 공간을 설정했다면 의미는 살아나고 서울창작공간축제의 특징을 살린 전달로 구체화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에피소드 '어쩌다 승부처럼'.
⎟ 이훈경 서울창작공간연극축제 운영위원장 미니인터뷰
이훈경 운영위원장(이하, 대표)은 극단 제자백가를 이끄는 대표이면서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을 할 때다. 이 대표가 대학로 연극 현실을 정책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롭다고 느껴졌고 대안적인 아이디어도 감각적으로 쏟아냈던 기억이 있다. 그 뒤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분야 위원이 되었고 연극인들이 살아가는 공연장을 찾아다니고 있다. 연극현장 문제를 발로 뛰며 체감하고 연극정책과 지원제도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대표가 이끄는 '서울창작공간연극제'는 극단들이 대관료를 감당하기 힘든 현실구조 때문에 다양한 대체 공간으로 연극을 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다 2011년 연습실을 기점으로 연극 공간축제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1회 축제는 극단필통, 동숭무대, 제자백가, 공연예술제작소 비상 등 11개 극단이 참여했다. 지난해 18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공연예술제 연극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 19회를 지속해 오는 동안 289단체, 참여 예술인만 1,970명에 달한다. 올해는 서울연극센터의 공간후원으로 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이훈경 대표를 인터뷰했다.
─ 다른 연극축제와의 차이는.
"'창작공간연극축제'는 관람료가 없다.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참가 자격을 최소화해 창작공간연극축제에 참여 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춘 것도 차이점이다. 아마추어 단체, 상업적 공연, 학교, 종교기관 단체만 아니면 개방되어 있다. 참가 극단들은 최소 참가비 3~5만 원만 내면 된다. 운영자들도 자발적인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다. 축제가 우수하다는 평가가 많은데도 지원금 받기는 힘들다. 만약 지원금으로 축제가 진행되면 최소 제작 경비를 지원하고 우수단체를 선정해 극장, 제작비 일부를 지원하고 싶다. 시상식은 서울연극제 폐막식때 함께 시상하고 있다. 연극인 복지재단에서는 행정 지원을 도와주신다. '공연과 이론모임'에서는 현장 리뷰 형태의 후원을 받아오고 있다. "
─ 탈 극장화의 실험적인 대안 공연(연극축제)으로 만족도는 어떤가.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일상 공간에서 창조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공간의 재발견이다. 한옥마을, 지하철, 술집, 시장, 건물 옥상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하고 있다. 재발견된 공간이 예술로 부화(孵化) 하는 장소임을 보여주는 축제라고 할 수 있고 실험성이 강할 수 있는 연극축제이다. 작품들도 공간에 따른 변화된 장소에서 표현되는 만큼, 감각적인 작품이 많다. 극단 홍시, 호밀, 화담, 창작 집단 지구 옆 동네 등 서울 공간연극축제에 작품과 극단들이 밀양연극제, 춘천연극제, 대한민국연극제 등 다양한 연극축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 작품 선별기준은.
"참가 운영단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창작공간연극축제다. 축제 일정에 참여가 가능한 단체(극단)이면 가능하다. 조건이 있는데, 연습실과 대체 공간에서 공연이 가능한 극단이면 된다."(웃음)
─ 올해 처음 서울연극센터에서 개최되었는데 반응이 좋은 것 같다.
" 대체 공간을 찾는 것이 쉽지 않고 비용도 발생한다. 비용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공연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몇 해 전부터 예술청과 연극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왔다. 올해 서울연극센터가 재개관을 하면서 공간을 후원해 줬다. 예술청은 공사 기간과 겹쳐서 불가능했다. 9개 단체 중 5개 단체가 연극센터에서 공연을 희망했는데 접근성도 높아 반응들이 좋은 것 같다. 연극센터는 올해 축제를 진행해 보고 내년 20회 창작공간 연극축제에 공간과 축제 후원을 고민하고 있다. 내년에는 넉넉하지 않더라도 지원금과 공간이 해결될 수 있는 결과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지원금 없이 20회를 버텨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 ."
─ 앞으로 어떻게 축제를 발전 시킬 것인가.
"지역과의 교류이다. 지난해 춘천 팀을 초청해 야외 공연을 진행 해봤다. 이런 방식을 더 확장하려고 한다. 지역공연을 초청해 서울의 대체 공간에서 공연하고 창공(창작공간 연극축제) 축제 참가팀도 지역 대체 공간에서 공연을 해보는 형태로 진행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서울과 지역 경계를 허물고 연결해 보자는 의도다."
- 극단 제자백가에서는 종로문화재단 '문화다양성연극축제' 지원 사업으로 선정된 <칼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갈치의 경상도 방언이다. 신문 한편에 짤막한 기사로 실린 "현선호 어선 침몰! 해군 책임회피 2명 구조, 6명 주검 " 문구가 스토리로 발전된 창작극이다. 성격이 급해 배에 잡혀 올라오는 순간 스스로 죽어버리기도 하고, 먹을 것이 없으면 서로 잡아먹기도 한다. 작품은 갈치 잡이 배 삼봉호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서로 물고 뜯는 상황에 내몰릴 때 보여주는 인간의 악랄함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인간의 잔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 하나하나가 그려내는 삶의 고단함과 치열함을 통해 '인간'이 '칼치'와 달라질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연극적 재미는
"갈치잡이 배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주인공 명호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되는 선상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 크다. 작품 후반 드러나는 극적인 반전으로 몰입도는 높아지고 극적인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선원들이 구사하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우리나라 지역 사투리는 우리나라 언어를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도 느껴질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칼치>는 현장감 있는 연극의 특성을 살리고 있어 관객들은 온전히 '연극적 재미'를 즐기게 된다. 19일부터 29일까지 시온 아트홀에서 종로문화 다양성 연극축제 선정 작품으로 공연된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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