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님은 어머님과 자녀에게 성실한 가장이셨습니다. 노조와 정치권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지난 13일 오전 4시쯤 배송지에서 숨진 60대 택배기사의 아들이 지난 15일 아버지가 소속된 택배배송업체에 보낸 문자를 통해 이렇게 하소연했다. 아버지가 숨진 지 10시간도 안 된 13일 오후 민주노총 택배노조와 정치권이 아버지의 죽음을 '과로사'로 본다고 했다. 한 노조 간부는 "야간 노동자 처우를 위해 윤석열 정부에 맞서 싸우겠다"고도 외쳤다. 그러자 아들이 나서 "장례 중인데 저를 대신해 유족 의견을 말씀해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택배노조는 유족의 호소가 알려진지 하루만인 16일 또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과수의 구두 부검 소견인 "정상인에 비해 2배 커진 심장비대로 인한 사망"이란 대목을 근거로 "과로사가 명백하다"며 쿠팡측에 책임을 추궁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과 야권 인사들이 단식 농성 이후 찾는 병원으로 유명한 녹색병원장 명의의 의견서를 근거로 내놨다. "국과수의 소견서를 보면 심근경색이 사망원인이고, 심근경색은 산재보상법에서 과로로 발생하는데 이 경우 '과로사'로 부른다"는 주장이었다. 녹색병원은 쿠팡 직원 여럿을 폭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민주노총 택배노조 간부 원모씨를 비롯해 전교조·금속노조 간부들이 단식 농성 후 입원한 곳이다.
그러나 택배노조가 낸 성명서엔 전날 유가족의 호소엔 대한 언급이 없었다. 유족의 아픔을 헤아리는 모습은 찾을 수 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A씨의 죽음 원인을 단정했다. 수년간 여러 택배기사의 사망 소식에 '과로사'로 밀어붙인 노조의 전형적인 주장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A씨는 택배노조와 무관한 비노조원으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위탁계약한 한 배송업체 소속 개인사업자로 일해왔다.
유가족의 의견을 무시하고 택배기사들의 죽음을 유리한 방향으로 몰아간 노조의 행태는 2년전에도 있었다. 경기 김포에서 택배 대리점을 운영하던 점장 이모씨가 "전국 택배노동조합의 집단 괴롭힘과 갑질일 견디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택배노조는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빚에 시달렸다"고 주장하는 가 하면, 이씨가 생전에 골프를 치는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져와 공개하며 "고인의 월 수익은 2000만원을 상회하며 풍요롭게 생활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유가족 사이에선 "노조가 사실을 왜곡해 고인을 두 번 죽였다"는 반발이 나왔다.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막무가내식 '물타기'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습에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이번 사건도 2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학계 일각에선 "노조의 주장처럼 쉽게 과로사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숨진 A씨의 심장이 800g에 이른다는 국과수 부검 결과는 일반 심장비대증으로 보기 어렵고, 고혈압 등 다년간의 기저질환과 수십년의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경찰은 A씨가 고혈압 등 지병을 앓고 있다는 유가족 진술에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 바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심장질환은 지난해 암 다음으로 사망자(3만3715명)가 많은, 지난 2012년부터 매년 사망원인 2위를 차지한 보편적인 질병이다. 지난해는 코로나(3만1280명)보다 사망자가 많았고 특히 60대 사망원인 2위로 집계됐다. 반면 쿠팡의 산재 사망자는 지난 5년(2018년~2022년)간 단 1명으로, 삼성전자(17명) 현대차(24명) 등 근로자 수 10대 기업 중 최하위였다. 같은 기간 물류운송업계 업무상 질병 사망자가 400건에 달하고, 대부분 산재 사망자가 건설업·제조업 등에 몰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쿠팡에서 1년간 26명이 사망했다"는 노조의 주장은 허무맹랑하다.
택배노조는 올 들어 수차례 논란을 일으켜왔다. 쿠팡측 직원을 '헤드록' 폭행해 검찰의 수사를 받는 가 하면, 멀쩡히 일하는 택배기사가 해고됐다며 주장했다 고소를 당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검찰 수사를 받는 노조가 고인의 죽음을 악용해 그간의 비판적 여론을 뒤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조는 정식 부검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명확한 의학적 근거 없이 안타까운 죽음을 '과로사'로 단정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죽음을 악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택배노조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고인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를 고이 떠나보내려는 아들의 눈물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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