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애국가 제3절 공활(空豁)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우리나라의 애국가 제3절은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그려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그런데 우리는 애국가 제3절을 노래 부르면서도 '공활'(空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물론 애국가 가사가 지어진 지 100년이 지나 '공활'이라는 단어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죽은 언어(死語)가 되었다. 공활은 한자로 빌 공(空), 활달할 활(豁)이다. 공활은 텅 비어 있지만 활달하여 생기 있고 힘차며 시원하다는 뜻이다. 가을 하늘이 공활하다는 것은 비록 하늘이 텅 비어 고요하지만 확 트여서 생기 있고 힘차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애국가의 작사자는 우리의 가을 하늘을 닮은 이러한 공활한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지키고 사랑하자는 뜻으로 애국가 제3절을 작사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공활(空豁)과 비슷한 뜻으로 적적성성(寂寂惺惺)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적적성성은 원효대사의 금강삼매경론에 나오는 단어로 고요하면서도 의식이 맑게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적적(寂寂)이란 물결이 잠잠해진 고요한 호수같이 어떤 번뇌도 일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성성(惺惺)이란 반짝이는 별처럼 영롱하고 또렷하게 마음에 와 박히는 것을 뜻한다. 즉 온갖 번뇌 망상이 생기지 않고 마음이 고요하면서도 새벽하늘의 별처럼 또렷한 것을 적적성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가(禪家)에서는 사마타를 적적성성으로, 위빠사나를 성성적적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사마타는 인도의 팔리어로서 고요함, 평정, 평화를 의미한다. 한자로는 멈춘다는 의미의 지(止)로 번역하고 대상에 집중하여 정(定)이라고도 한다. 위빠사나는 몸과 마음의 순간순간 변화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로는 지켜보고 관찰한다는 의미의 관(觀)으로 번역하고 알아차림으로 지혜를 얻는다고 하여 혜(慧)라고도 한다. 적적(寂寂)은 고요함이요 성성(惺惺)은 깨어 있음이다. 고요함과 깨어 있음은 선(禪) 수행의 중요한 두 가지 요소다. 이것을 지관수행(止觀修行), 또는 정혜쌍수(定慧雙修)라 한다.

고요한 가운데 깨어 있고 깨어 있는 가운데 고요해야 올바른 수행이라 할 것이고 이 순간에 밝고 생생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선가에서는 적성등지(寂惺等持), 즉 고요함과 깨어 있음을 똑같이 수행한다고 한다. 번뇌 망상이 사라졌으나 고요하고 편안하기만 하면 적적(寂寂)에 머무는 것일 뿐이므로 적적성성으로 마음이 고요하면서도 또렷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요한 가운데 깨어 있으면 밝고 또렷해져 활달하고 생기 있는 생명력이 눈앞에 전개되어 나타나고 영원한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원효대사의 적적성성은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처럼 공활한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세상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삶에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분야는 서로 다르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공활함과 적적성성의 창조적 상태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이 고요하고 깨어 있을 때 집중력과 지혜가 길러져 통찰력과 창의성이 발휘됨으로써 삶의 온갖 어려운 난관과 문제를 잘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고요하면서 깨어 있어야 하고 진리와 지혜의 경전을 되풀이 읽고 경전 구절을 마음에 새기거나 묵상함으로써 성현(聖賢)을 닮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 영원한 존재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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