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한 구청에는 7~8년째 복지·건축 담당 부서를 찾아와 직원들을 노골적으로 괴롭히는 민원인이 있다. 이 민원인은 구청 소식지를 펴고 한줄 한줄 읽어가면서 "이게 맞냐"고 계속 질문하는 방식으로 공무원들의 업무를 방해한다. 해당 구청 관계자는 "한 번 오면 최소 3~4시간은 말을 쏟아내기 때문에 다른 업무 처리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했다.
긴급한 신고를 처리해야 할 경찰서 지구대는 술에 취한 사람이 점령한 지 오래다. 경찰관에게 욕하고 멱살을 잡는 일은 예삿일이고 노상방뇨까지 서슴지 않는다. 강경 진압을 시도하면 경찰관을 상대로 민원이나 형사 고소, 진정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함부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소방관들은 구급차를 택시처럼 여기는 악성 민원에 몸살을 앓는다. 꾀병을 부리면서 집 근처 병원으로 후송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 소방관은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2년 전 신고자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 소방관은 "죽이겠다고 소리치는 신고자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들린다"며 "자괴감과 수치심으로 너무 힘들어 병원 상담도 받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구청, 경찰, 소방, 학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며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악성 민원이 공직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무작정 큰소리만 치는 게 아니라 정보 공개청구 등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지능적으로 접근하는 신종 악성 민원은 끊임없이 새로운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대구시와 8개 구·군에서 벌어진 폭언, 폭행 등 민원인의 위법행위는 모두 6천848건으로 한 해 평균 2천건에 이른다. 대구경찰청이 처리한 공무집행방해 사건은 지난해 552건에 달했고 올해 8월까지도 402건을 기록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한 악성 민원에 시달린 교사 등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도 끊이질 않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유치원 및 초·중·고 교직원 3만2천951명을 대상으로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생활지도(46.5%)와 민원(32.3%)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교사의 민원 스트레스 정도를 묻는 질문엔 '심각하다'고 응답한 교원이 전체 응답자의 97.9%에 육박했다.
문제가 반복되면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은 커지고 있지만 관련 법안들은 국회에 잠들고 있거나 현실에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매일신문은 이날부터 ▷구청 ▷경찰 ▷소방 ▷학교 ▷교정시설을 무대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악성 민원 실태를 순차적으로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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