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K 인구충격] 5살부터 '영어 유치원' 사교육비 부담…출산 포기하는 젊은 부부

"영어유치원이냐 일반유치원이냐 고민…두 자녀 영어유치원 교육비 월 150만원 부담"
"사교육 억제 교육당국 정책도 '초극세사 미봉책'…상대평가 있는 한 줄 세우기 사라지지 않아"

지난 6월 대구 시내 한 입시 학원이 예비 중학생 대상 의대반 강좌를 광고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지난 6월 대구 시내 한 입시 학원이 예비 중학생 대상 의대반 강좌를 광고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늘어나는 사교육비가 젊은 부부의 출산 계획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다음 사교육비'라는 말이 나올 만큼 결혼·출산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영유아 때부터 시작되는 조기교육 지출 탓에 아이 한 명만 낳아 기르기도 벅차다는 목소리가 높다.

◆영유? 일유? 영유아 때부터 학력 격차

학령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도 사교육비 증가세는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사상 최대치이자 2년 연속 역대치를 갈아치웠다.

사교육비 부담은 젊은 부부들이 출산을 망설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이 2009∼2020년 국내 16개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1인당 사교육비가 1% 증가하면 이듬해 합계출산율은 약 0.0019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아들이 가장 처음 '학력 격차'의 기로에 서는 순간은 유치원에 가는 만 3세가 되면서다. 학부모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이른바 '영어 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낼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른 채 일반 유치원에 보낼지 고민한다.

초등학교 2학년, 만 5세 남매를 둔 공무원 A씨는 고민 끝에 첫째에 이어 둘째도 초등학교 입학 직전 1년간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교습비만 한 달 120만원에 차량비, 급식비까지 합하면 매달 영어 유치원에만 150만원 이상을 쓴다. 부부 공무원 벌이로 부담이 되는 비용이지만 영어 유치원을 보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A씨는 "어릴 때 영어 유치원에 들이는 돈이나, 커서 영어 학원에 들일 돈이나 결국 같다는 주변 말에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원아 부모들의 사교육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자녀가 진도를 따라가도록 가정에서 별도로 영어 과외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

A씨는 "영어 유치원을 보내면 그 안에서 학원 레벨테스트 대비법 등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며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실력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다른 학원에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영어 유치원에 대한 학부모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학령 인구는 감소해도 영어 유치원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 유아 대상 영어학원(하루 4시간 이상 교습 제공 기준) 수는 840곳으로, 2018년(562곳)보다 50% 늘었다. 서울(289곳)과 경기(221곳)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이어 부산(73곳), 대구(41곳), 인천(33곳) 등의 순으로 많았다.

평범한 유치원에 보내는 젊은 부부도 사교육비에 등골이 휘는 건 마찬가지다.

유치원에 다니는 4세 외동딸을 둔 워킹맘 B씨는 유치원 방과후 교실 외에 학습지 3과목을 추가로 시키는 데 매달 약 20만원을 쓴다. 최근 아이가 태권도, 피아노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예체능 학원비(10만원)를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B씨는 "결코 사교육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님에도 매 학기 초엔 방과후 교재비 등으로 한 번에 80만원이 나가 그 달은 생활비가 적자"라며 "지금은 아이가 하나라서 부담이 없지만 두 명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둘째 생각은 접었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대구 수성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21일 오후 대구 수성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송원학원·대성학원, 2024학년도 수시 지원전략 설명회'에서 학부모와 수험생이 수지 모강요집을 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잇따른 사교육 억제 정책도 실패

정부가 사교육 억제와 공교육 강화에 나서지만 역부족이다. 최근 정부는 수능 출제위원과 입시 업체가 유착하는 '사교육 카르텔'을 지적하며, 킬러 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해 사교육 과열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전 정부들도 사교육을 막고자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김영삼 정부는 1994학년도 대입부터 3년간 유지했엇던 '수능·내신·본고사' 체제를 해체하고 본고사를 폐지(논술만 허용)했다.

이명박 정부는 특목고 입시에서 내신 과목을 제한했고, 대입 정시에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수능·내신·논술' 체제를 해체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등급제)로 전환하는 등 사교육 억제책을 내놨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선 줄 세우기, 상대평가 체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사교육이 성행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구본창 사단법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킬러문항 배제, 교내 시험 서술형 평가 확대 등 교육당국이 내놓는 사교육 억제 정책들은 초극세사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구 소장은 "애당초 평가원이 '학교에서 얼마나 충실히 배웠는지 평가하고자 고교 교육과정 수준과 내용에 맞춰 출제해 왔다'고 했지만, 고등학교 수준을 벗어난 어려운 문제로 최상위권을 변별한 것이 드러났다. 이런 문제를 출제하지 않는 건 교육 원칙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대평가가 존속되는 가운데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줄 세우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좀 더 촘촘하게 줄을 설 뿐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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