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오늘이 제게는 가장 여유롭고 행복한 날입니다. 이제는 진짜 꿈을 이뤄야겠다는 희망이 조금씩 생기네요."
최근 제1회 삼보미술상을 받은 박준식(42·사진) 작가를 대구 중구 남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2021년 포르쉐코리아 '드리머스 온' 아트 어워드 대상, 대구문화예술회관 '2022 올해의 청년 작가', 올해 삼보미술상까지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 받고 있는 젊은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최근 수년간의 뚜렷한 성과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울 터. 그는 "수상자로 선정해준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너무 들떠서 작품에 있어 욕심을 내거나 과한 얘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내년 삼보미술상 기념전을 보고 나를 선정해준 분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잘 준비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의 강력함이 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작업 방식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투명하게 변하는 바니시와 안료를 섞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뒤, 토치로 열을 가하면 투명했던 그림이 하얗게, 혹은 잿빛으로 드러난다. 그 위에 다시 '붓질'과 '불질'을 여러 차례 쌓아 '불 그림'을 완성한다.
"결벽증이 있었던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할머니가 그림을 치우기 전에 빨리 말리려 하다 우연히 지금의 작업 방식을 발견했어요. 한편으로는 '평생 춥게 살았으니 화장해 달라'는 말을 하셨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는 나만의 암호 코드이기도 합니다."
불로 그림의 선이 살아나는 과정이 멋있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작가로서 우뚝 일어서기 쉽지 않았던 아픔이 담겨있다. 계명대 서양화과에 진학한 20대부터 꾸준히 불을 사용한 그림을 그려왔으나 무명의 시간은 길었다. 그는 "솔직히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며 "이사를 수차례 다니고, 전국의 레지던시를 옮겨 다닌 탓에 과거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생계를 책임지며 작업을 이어나가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트 아르바이트, 임상시험 참여 등으로 겨우 카메라와 컴퓨터를 사 의성에 웨딩사진 스튜디오를 차리기도 했다. 당시 지은 스튜디오 이름이 지금 그의 작가명인 '노비스르프(Novis Le Feu)'다.
그는 "노비스르프는 '초심자의 불'이라는 뜻이다. 정말 이것까지 꺼지면 망한다는 마음으로 창업했었다"며 "스튜디오는 문을 닫았지만 지금도 웨딩 사진, 영상 촬영을 가끔 하며 그림으로 구현하지 못하는 것을 사진 작업으로 해소한다. 또 작업 외 시간에 쉰다는 게 불안해서, 뭔가를 계속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20, 30대 때의 고생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나름의 전략을 세워 작업해왔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내가 수많은 작품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일단 강력한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위압감을 주는 대작 위주로 발표했습니다. 큰 그림은 오래 걸리는 데다 작업실이 아닌 집에서 그리기 어려웠지만, 시간을 들인 작업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해야 이 고생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전략의 성공(?)으로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한 그는 이제서야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내 그림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림이 큰 탓에 조금씩 작업해야 하고, 집에서는 똑바로 세워서 보기가 어렵다. 전시장에서 겨우 처음 그림을 제대로 보게 된다. 이제는 내 작업실을 마련해 그림을 세워서 보고싶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서 묵묵하게 자기 목소리, 얼굴 내지 않고 성실하게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다. 그런 분들에게 제대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다. 또 예술가로서 많은 지원을 받았으니, 좋은 작품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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