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40성부를 위한 합창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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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선율이 아닌 음악은 대개 수직적 화음의 결합(화성음악)과 수평적 선율의 결합(다성음악)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수평적 결합이 우위에 있는 작곡기법을 대위법(counterpoint)이라고 하는데, 이는 '음표 대 음표'를 의미하는 라틴어인 '풍투스 콘트라 풍투스(puntus contra puntus)'에서 유래된 말로 각기 독립된 여러 개의 선율을 중첩해 전체로서의 조합을 만들어 내는 기법이다.

9세기에 시작된 대위법은 13세기 이후에 주로 발전해 가장 발전했던 시기는 15세기와 16세기 때인데, 이 당시 최고의 작곡가는 최고의 대위법적 선율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화성음악과 다성음악이 공존했던 17세기의 후반부에서는, 바흐나 헨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위대한 작품의 조건이 성부의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은 수의 성부라도 어떻게 그것을 대위법적으로 전개해 가는가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토마스 탈리스라는 한 영국의 작곡가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16세기에 한창 잘 나가던 작곡가로서, 대위법의 대가였다. 그의 작품 중 'Spem In Allium(다른 어떤 것에도 소망을 두지 않나니)'과 'If Ye Love Me(날 사랑한다면)'은 오늘날에도 더러 연주된다. 둘 중에 전자는 40성부를 위한 노래로서 작곡에 있어서 그의 대위법적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5성부(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로 구성된 8개의 합창단이 부르는 이 작품의 각 성부는 나머지 39개와는 선율이 다르다. 어떤 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138 마디 동안 각각의 성부는 "각자 자신의 길을 가되", 선두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양처럼' 가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소리로부터 시작해 하나씩 더해져 나중에는 40명이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른다. 더스틴 호프만이 지휘자로 나오는 영화 '보이 콰이어(Boy Choir)'에서 이 노래의 한 부분을 들을 수 있다. 이 작품의 2012년도 녹음판은 영국 클래식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일설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작곡가였던 알레산드로 스트리지오가 1561년에 작곡한 40성부를 위한 합창곡인 'Ecce Beatam Lucem(거룩한 빛을 보라)'에 런던의 음악 애호가들이 열광하자, 이에 질세라 이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주장은 1573년에 탈리스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40번째 생일을 맞아 이 모테트(교회 합창곡)를 썼다고 한다. 가사는 구약성서의 외경인 '유딧기'에서 따왔는데, 왜장과 함께 순국한 조선의 논개처럼, 아름다운 이스라엘의 과부로서 침략국인 아시리아에 거짓으로 투항하여 연회 후 만취한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딧에다 여왕을 비유해 그녀로부터 칭찬을 받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탈리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개신교 신자인 엘리자베스 여왕보다는 오히려 가톨릭 신자인 메리 여왕을 기리려 이 작품을 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톨릭 군주와 개신교 군주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조합의 작품도 18세기 후반에 태어난 피에트로 라이몬디라는 이탈리아 작곡가의 작품에 의해 추월을 당한다. 이 실험적인 작품은 4성부로 구성된 16개의 합창단을 위한 것으로 총 64성부로 돼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두 배로 증가하듯 128성부의 합창도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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