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얼굴이 못생겨 보이는 3대 거울이 있다? 바로 1천원 숍, 미용실…그리고 옷 가게 거울이다. 사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건 없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 이야기가 꽤 회자됐다. MMM팀 역시 누구보다 공감을 많이 했다는데….
3대 못난이 거울 중에서도 최고봉이 있다면 단연 옷 가게 거울이 아닐까. 특히 옷 가게에 들어가면 유독 후줄근해 보이는 나 자신에 얼른 옷을 구매하고 가게를 후다닥 나오고 싶은 심정 다들 알지 않은가? 뭐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하자. 옷 가게의 화려한 조명들이 나 자신을 구석구석 비추니 말이다.
그래도 이왕 화려한 조명에 새 옷을 입은 나 자신도 이리저리 살펴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모델 포즈도 취해보고 옷이 내게 잘 맞을까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어 피팅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거울 앞에서 서는 용기를 내보지만… 오픈된 공간에다 종업원이며 다른 손님들이며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자꾸만 뻘쭘해지고 초라해지는 나 자신. 우리는 그렇게 옷 가게를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서론이 길었다. 혹시 이 이야기에 "나 너무 공감돼!"라는 사람은 주목하시라. 이제 옷가게 거울이 3대 못난이 거울에서 벗어날 시대가 도래했으니…. 더 이상의 후줄근한 나 자신은 없다. 새 옷을 입은 모델 같은 나 자신만 있노라.
옷 가게 거울들이 변신 중이다. 화려하고 프라이빗한 피팅룸이 MZ세대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변화하는 피팅룸, 미코노미 영향
'○○에서 옷 5벌 입어보기'
'○○브랜드 신상 입어보기'
요즘 MZ라면 이런 제목의 영상들을 아마 SNS(소셜미디어서비스)에서 한 번쯤은 봤을 테다. 영상의 주 무대는 바로 피팅룸이다. 특정 브랜드의 신상이 나오면 옷 가게에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피팅룸으로 들어간다. 옷 매치를 적절히 시켜 착용한 뒤 마치 모델처럼 이리저리 포즈를 취한다.
예전 피팅룸이 단순히 소비자가 옷을 입어보는 공간에 불과했다면 요즘 시대 피팅룸은 신(新) 포토존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피팅룸 샷'이다.
왜? 미코노미(Meconomy), 나(Me)와 경제(Economy)의 합성어인 자기 중심 소비를 뜻하는 트렌드가 MZ세대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삶을 만들어 가면서 자신을 위한 경험이나 소비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기에 패션업계가 빠르게 응답했다. '피지털(Phygital)' 전략이다. 오프라인 공간을 의미하는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로 오프라인 공간에서 디지털 경험까지 제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피팅룸의 변신'이다. 고객들이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개인의 취향에 맞게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할 수 있도록 피팅룸 마케팅 전략이 탄생했다. MZ세대들이 추구하는 자기 경험 중심 소비가 이곳에서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래서 프라이빗한 공간만 주면 되냐고? 절대 아니다. 옷 가게 자투리 공간에 작게 배치 해뒀던 피팅룸을 개수를 늘려 매장 중앙에 위치시킨 뒤 피팅룸 안도 포토존으로 잘 활용할 수 있게끔 화려하게 혹은 예쁘게 꾸몄다.
피팅룸 맛집으로 소문난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은 파랑, 보라, 노랑 등 피팅룸 내부 조명을 고객들이 원하는 색깔로 바꿀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스마트폰 화면을 미러링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설치된 '라이브 피팅룸'을 만들었다.
온라인 명품 판매 플랫폼 머스트잇은 피팅룸을 엘리베이터와 파우더룸 콘셉트로 잡았고 발란 매장은 컨셉트를 '여행'으로 잡고 피팅룸을 고급 리조트의 화장실처럼 꾸몄다. 고객이 착용하고 싶은 상품을 스마트 미러에서 선택하면 직원이 확인하고 피팅룸까지 가져다주는 '스마트미러 피팅룸' 시스템이다.
◆피팅룸 내부에서 무슨 일이?
찰-칵, 찰-칵
얼마 전 새로 생긴 무신사 스탠다드 동성로 점. 어김없이 옷 가게 매장 피팅룸에서 사진 촬영 소리가 들린다. 옷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MZ 최모(27) 씨. 오늘 고른 옷은 3벌. 피팅룸 사방에 설치된 거울 덕분에 뒤태도 확인이 쉽다. 평소 거울 샷을 즐기는 그는 새 옷을 입고 갖은 포즈를 취한다. 어떤 포즈가 좋을까. 인스타그램에 숱하게 올라온 '피팅룸 샷'을 보며 공부도 좀 했다. 거울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내 얼굴 반을 가린 뒤 한쪽 다리를 앞으로 살짝 내밀고 구부린다. 마치 모델 같군.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친구들에게 즉각 보낸다.
'이 옷 어때? 괜찮아?'
'ㅇㅇ, 잘 어울림'
옆방 무신사 라이브 피팅룸에 들어간 MZ 배모(31) 씨와 이모(35) 씨. 최근 라이더 재킷에 꽂힌 배 씨는 무신사 신상 재킷을 입고 동영상 촬영에 나섰다. 오른손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거울 앞에서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른다. 왼손으로는 옆 조명 바꾸기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는 그. 파랑, 보라, 분홍, 노랑… 화려한 조명이 그를 감싼다. 이 씨는 스마트폰 미러링이 가능한 디스플레이를 조작 중이다. 새 옷을 입고 디스플레이 화면 속에 나오는 자신을 또 휴대전화로 찍는다. 이게 바로 요즘 MZ세대들이 즐겨 찍는 셀카 찍는 방법이다.
이상 요즘 피팅룸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자 MMM팀의 경험담이다. 무엇보다 나 혼자만 즐길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보는 눈이 없으니 자신감도 올라간다. 이리저리 즐기다 보니 옷 한 벌 입고 즐기는 데만 무려 15~20분이나 걸렸다.
이렇다 보니 주말이면 피팅룸 입성을 위해 옷 가게 매장에 길게 늘어선 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무신사 스탠다드는 피팅룸에서 입어볼 수 있는 옷을 5벌로 제한했다. 한 벌을 입고 즐기는데 약 15분, 아무리 빨라도 10분이라고 쳐도 5벌까지 입어보려면 적어도 50분이 걸리는 셈이니 줄이 길게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객의 충분한 편의를 위해 대부분 옷 가게는 피팅룸 사용시간 제한을 두진 않았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적정 시간으로 이용하는 매너도 필요해 보인다.
무신사 스탠다드 동성로점 관계자는 "고객들이 충분히 옷을 입고 즐길 수 있도록 이용 시간을 따로 정해두진 않는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이면 피팅룸 웨이팅이 자연스레 생길 수밖에 없다"라며 "다만 옷에 화장이 묻지 않도록 페이스커버 착용을 잘하고 피팅룸 입장 시 받는 수령 표를 잘 반납해 주시면 좋겠다"고 귀띔했다.
◆MZ 잡아라~ 팝업스토어도 나섰다
피팅룸의 화려한 변신 소식 받고 하나 더. 신(新) 포토존으로 떠오른 피팅룸만큼 요즘 MZ들이 열광하는 곳이 하나 더 있다. 요즘 심심찮게 보이는… 바로 팝업스토어다.
팝업스토어가 열리는 단위는 보통 2주일. 고객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제공하고자 백화점 3사들은 요즘 이색 팝업스토어 개장에 열을 올린다. 올 상반기 열풍을 일으킨 슬램덩크의 팝업스토어에 들어가고자 전날 새벽부터 문 닫힌 백화점 앞에 장사진을 치는 것은 물론 몇 달 전 진행된 유튜브 채널 인기 캐릭터 '빵빵이의 일상' 팝업스토어에는 무려 2만명의 방문객이 모였다.
피팅룸처럼 유통업계가 자신의 경험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는 MZ세대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셈이다.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하는 물품만큼 신경 쓰는 게 디스플레이다. 고객들이 길고 긴 대기시간을 견디고 이곳에 입성한 만큼 재미는 물론 추억까지 남기게 해줘야 하는 게 도리다.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포토존이다. 오는 12월까지 더현대 대구에서 열리는 이케아 팝업스토어에는 이케아의 대표 상품 '강아지 인형'으로 꾸며진 포토존이 마련됐다. 팝업 스토어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귀여운 외모의 강아지를 보면 지나칠 수 없다. 성별, 나이 불문 포토존에 앉는다. 또 찰-칵!
시민 유모(23) 씨는 "대구에는 이케아가 없으니 어떤 상품을 판매하는지 궁금해서 팝업스토어를 찾았다"라며 "구경만 하고자 왔는데 인기 상품 강아지 인형을 보니 지갑이 절로 열리게 됐다. 팝업스토어 규모가 크진 않더라도 충분히 구경해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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