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119구급대원이 구급차를 택시처럼 호출하거나 술에 취한 채 대원들을 향해 주먹질하는 악성 민원인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과거 소방공무원을 괴롭혔던 '장난 전화'는 애교였다는 자조 섞인 한탄도 나온다.
◆출동한 구급 대원 발로 밟고, 주먹질까지
지난 2021년 5월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달라는 신고 전화가 대구소방본부에 접수됐다. 60대 남성인 신고자 A씨는 정확한 위치도 설명하지 않은 채 구급대원이 빨리 오지 않는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대원들이 중구 번개시장에 있는 신고자를 겨우 찾아 이송하려 하자 A씨는 늦었다는 이유로 구급차를 발로 차고, 대원들을 밀치며 삿대질을 이어갔다.
정오가 막 지난 시점이었지만 A씨는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는 상태였다. 그는 가장 가까운 병원이 아닌, 집 근처인 경산의 병원으로 이송해달라고 요구했다. 대원들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수차례 설명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그는 고성을 내지르며 대원 중 1명을 넘어뜨려 발로 밟기 시작했다. 나머지 대원들이 말렸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약 10분 뒤 출동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시 폭행을 당했던 박남규 소방장은 "아직도 '너희들 죽이는 게 어렵지 않다'고 소리치는 신고자의 말이 생생하게 들린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그때는 자괴감과 수치심으로 너무 힘들어 병원 상담도 받으러 다녔다"며 "그 뒤로도 환자와의 거리감도 생기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 지금은 119 항공대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송 중인 환자가 구급대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한 일도 있었다. 2021년 8월 20대 남성인 B씨는 취한 목소리로 119에 전화를 걸어 "호흡이 가쁘니 빨리 병원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던 B씨는 대뜸 "왜 쳐다보냐"며 대원의 왼쪽 뺨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B씨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대부분 만취 상태로 범행
대구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신고자의 폭행, 폭언으로 부상을 입은 소방공무원은 57명이다. 소방공무원이 참는 바람에 사건화되지 않은 것은 이보다 더 많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출동한 구급대원을 괴롭히는 가해자들은 대부분 만취 상태로 범행을 저지른다. 같은 기간 가해자 49명 중 47명(95.9%)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진술했다. 대구소방본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가해자들은 술 때문에 일어난 '실수'로 치부하지만 우리 대원들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호소했다.
소방당국은 악성 민원으로부터 대원들을 지키기 위해 폭행 우려가 있는 신고자는 접수 단계부터 경찰과 공동 대응하고 대원들에게 '보디캠'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대원들은 자신들을 향한 주먹질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입을 모은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보니 현장에서는 '안 아프게 맞는 법'들을 공유한다고 한다. 소방 자체적으로 법률 전담 인력을 늘려 각종 폭행, 폭언 등에 강력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구급 대원들이 정당방위를 하더라도 또 다른 피해를 안 입도록 관련 법들도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포항 찾은 한동훈 "박정희 때처럼 과학개발 100개년 계획 세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