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부모를 지켜보는 일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기자도 그렇다. 부모가 나이가 들수록 평소와 다른 표정과 몸가짐을 보인다. 특별한 변화가 확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전에는 없던 짜증과 서운함이 늘어나든지 분명 전에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한다.
노화는 눈에 잘 띄진 않지만 결과는 분명하고 갑작스럽다.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기에 보편적이면서 고유하고 특별하다. 돌봄의 경험과 고통은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책 '어머니를 돌보다'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소설가 린 틸먼이 희귀질병을 앓는 어머니를 11년간 돌봄 경험을 사실적으로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작가 역시 나이 듦과 병듦, 필수노동으로서의 돌봄, 그 끝에 놓인 죽음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냉철하게 직면한다.
작가가 가진 목표는 명확하다. 언젠가 돌봄의 제공자이자 또 대상이 될 사람들에게 유용한 도움을 주고 위로를 건네는 것. 아직 돌봄의 경험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작가의 돌봄 이야기는 깊게 다가간다.
린 틸먼이 기록한 그의 어머니의 노화는 이랬다. 매사를 꼼꼼히 기록하던 어머니의 문장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작가는 어머니의 병을 알아내기 위해 병원 순례를 하며 수많은 의사들을 만나는 투병 생활을 시작한다. 의사의 진단은 서로 달랐다. 여기서 작가는 의료진으로 무조건적으로 맹종해선 안 된다고 충고한다. 환자 가족은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이끌어내기 위해 의료진과 교섭하고 필요한 것을 얻어야 한다. 노인 인구와 인간의 수명이 똑같이 늘고 있지만 노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의사는 거의 없는 아이러니한 고령사회다.
나이 든 어머니를 돌보는 11년의 시간은 모든 일상과 생활의 제약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은 순간도 있었고 그런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처지가 너무 비참하기도 했다.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진심이기보다는 양심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간병인에게 의존하고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양심'과 자기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욕망'사이에서 작가는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건 감정의 극심한 낙차를 수반하는 일이다.
병든 부모를 돌보는 일은 완벽하게 제대로 해내기란 불가능하다. 돌봄은 지금 자신이 혹여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자책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황폐하고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고령화 사회에선 '돌봄'이 중요성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데 이 책은 돌봄이 불가피하지만 매우 힘든 일이라는 점을 상기 시킨다. 의무와 도리만이 아닌 필수 노동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작가 가족들과 함께하며 어머니를 돌본 많은 간병인의 소개가 나온다. 주로 유색인종 여성이었던 간병인의 돌봄 행위가 경제적, 계급적 차별의 기반 위에 있었다는 백인으로서의 자성도 잊지 않는데 이는 동시에 돌봄 노동이 어떤 이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며 우리 사회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홀대받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부모의 돌봄의 끝은 대개 죽음이다. 작가는 임종 과정과 죽음의 순간도 자세히 묘사한다. 그는 어머니의 떠남을 '어머니가 느린 속도로 해체된다'로 표현하며 사람이 죽을 때 잘 알려지지 않은 세세한 사실까지 기록한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와 일생을 함께한다는 것은 부모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투병과 돌봄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책은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세심하다 못해 정직해 감상적인 모성 신화를 뛰어넘는다. 모성 신화에 부합하지 않는 어머니상이 병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말했듯 작가는 겉으로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11년 동안 그가 보여준 행동은 그와는 다른 감정을 말하고 있다. 결국 사랑이다. 263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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