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미국은 "21세기에도 전쟁은 불가피하겠지만, 최소한의 인명 피해와 저비용으로 신속히 종결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통한 미국의 군사 혁신이 전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은 것이다. 무기의 정밀화, 화력 투발 수단의 다양화, 정보수집 처리 체계의 자동화를 통해 '전쟁에서의 군사기술적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1990년 걸프전에 투입된 미국 주도의 다국적 연합군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대규모인 이라크 육군을 100시간 만에 격파했다. 지상전에서 다국적 연합군의 피해는 단지 500명 미만의 사망자가 전부였다. 1999년 일어난 코소보 분쟁은 전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처럼 보였다. 표적 식별 처리 절차와 관련해 오폭 논란이 있었지만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를 중단시키고 군을 철수케 만들었다. 그것도 한 명의 나토군 전투 사망자도 없이 분쟁을 종결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21세기 전쟁은 중대한 수준의 폭력 없는 '인도적 전쟁'이 가능할 것이란 믿음을 주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세계의 화약고, 중동(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하마스) 간의 전쟁이 터졌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2023년 10월 7일 중동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공격으로 1천500명,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1천9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이란의 참전 가능성에 따른 제5차 중동전 확전 전망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군사기술적 혁명을 통해 '인도적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인권유린, 난민과 실향민을 낳았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는 폭력, 착취, 인신매매, 성폭력, 납치 등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2023년 8월 기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은 약 7만여 명, 민간인은 9천100여 명 정도다. 2022년 4월 기준 난민은 500만 명 이상이며 실향민은 710만 명이 발생했다. 이는 21세기 세계 최대 난민 탈출 비율이며 최대 난민 위기 사태다.
21세기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 혁신을 통해 슬림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현재 실전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래식 무기와 최첨단 무기가 혼합되고,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전쟁에서 최소의 인명 피해와 저비용으로 전쟁을 신속히 종결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보여주는 것이다. 21세기 전쟁에 대한 미국의 기대와 달리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참혹한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낳는다는 점에서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미국은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집중과 분산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착 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보다는 제5차 중동전으로 확전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집중한 사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러시아의 공세가 활발해지면 중국은 기회를 틈타 대만 무력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쟁이 두 개의 전역에서 제3의 전역으로 확장된다는 것은 미국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게는 우크라이나로부터 크게는 전 세계의 명운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제한된 전쟁을 통해 신속하게 전쟁을 종결지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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