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와 함께 신윤복의 대표작인 '혜원전신첩' 30점 중 '주사거배'로 "술집에서 잔을 들다"는 제목이다. 배경에 그려진 대청마루의 3층 찬장, 뒤주와 그 위의 백자 그릇, 주모 옆의 5층 찬탁과 주변의 집기 등 세간이 지금 눈으로 보자면 민속박물관의 한켠이다.
신윤복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필선과 다감한 색채의 감각적인 화풍으로 그려낸 등장인물은 모두 7명이다. 주모와 심부름꾼, 손님들의 옷차림과 얼굴 생김새, 표정과 시선, 손 모양과 몸동작이 실감나 이들의 대화와 각자의 속내를 말풍선으로 넣을 수 있을 듯 생생하다.
커다란 가마솥 두 개가 얹힌 부뚜막 앞에 앉은 주모는 긴 술 국자를 내밀며 마지못해 한잔 더 따르려는 모습이고, 옆 사람을 돌아보며 무슨 말인가를 하면서 젓가락을 내려놓는 인물이 이 마지막 잔의 주인공이다. 붉은 철릭을 입고 노란 초립을 쓴 옷차림으로 보아 무예청 별감인 하급 무관이다. 오른쪽에 있는 검은 구레나룻의 인물이 허리춤의 주머니를 찾으며 술값을 치르려는 듯하다.
진즉에 대문간으로 나선 두 사람은 술청에서 아직 머뭇대는 세 사람에게 어서 가자고 재촉한다. 제일 오른쪽 인물은 까치등거리를 걸치고 위가 뾰족한 모자인 깔때기를 쓴 의금부 나장이다. 그러니까 한 무리의 손님 중 두 명은 공무원이고, 세 명은 왈짜, 왈패로 지금 말로 하자면 건달이다. 왈짜들과 대전별감, 포도청 군관, 승정원 사령, 의금부 나장 등의 관원, 왕실의 인척이나 권세가의 겸인(傔人) 등이 유흥가를 주름잡았다고 한다.
화면 왼쪽의 제화는 술집 풍경에 어울리는 당나라 이백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 중 두 구다.
거배요호월(擧盃邀晧月)/ 술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고
포옹대청풍(抱甕對淸風)/ 술항아리 안고 맑은 바람 대하네
혜원(蕙園)/ 혜원(신윤복)
조선의 미술 아카데미인 도화서 화원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도 화원이었다고 전하는 신윤복은 여성의 아름다움, 양반사회의 유흥, 남녀 간의 춘정(春情)을 그려내는 일을 주제로 삼았다. 화가로서 직업적 안정성을 확보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범적인 서민 풍속 대신 도시민의 유흥 풍속을 정면으로 다뤘다.
무척 용감한 주제이고 지금의 환경이라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의 붓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장면을 전해준 신윤복의 용기와 실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신윤복은 진달래가 화사한 봄날 장안의 건달들이 술집으로 몰려다니는 광경을 이야기가 넘쳐흐르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선사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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