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수도승의 아버지 성 베네딕트가 쓴 규칙서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 오, 아들아 잘 들어라 … 내 마음의 귀를 기울여라." 스위스에 산재한 수도원들, 그 가운데서도 디센티스 수도원에서 베네딕트의 정신이 떠 올랐다. 그 옛날 수도승들은 하나님의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이곳에 움막을 짓고 기도해 왔다. 그들은 이곳에서 세상 지식이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구했다. 그들은 학습과 경험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소리로 이 땅의 소리를 분별하며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우리는 체르마트에서 며칠 쉬며, 마터호른(Matterhorn)산을 마음껏 묵상했다. 마터호른은 언제봐도 신비 그 자체였다. 정신없이 마터호른을 바라봤다. 맑고 작은 연못에 비친 마터호른, 구름 속에 갇힌 마터호른, 맑은 하늘 속에 드러난 마터호른. 어느덧 마터호른이 두건 달린 망토를 입은 수도승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곳을 떠나 우리는 루크마니에(Lukmanier) 고개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달렸다. 해발 1915m의 루크마니에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따라 얼마를 달렸을까 시간을 잴 틈도 없었다. 모퉁이 길을 돌자 우리 앞에는 거대한 백조 한 마리가 알프스에 내려앉아 있었다.디센티스 수도원은 스위스 동부 그리슨스(Grisons) 주에 있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이다.
디센티스(Disentis)는 로마의 이름 Mustér에서 왔고 그리스어로 Monasterion이다. 이 말은 '홀로 사는 장소'란 뜻이다. 디센티스는 스위스에서도 알프스산 가장 깊고 후미진 곳에서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것이다. 수도승의 길은 단독자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홀로 있을 때,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유가(儒家)에서는 인격 수양의 방법으로 '신독'(愼獨)을 이야기한다. 홀로 있을 때 삼가라는 말이 아닌가. 수도승의 최고의 미덕도 '홀로 있음'이고, 그 홀로 있음의 영적 외로움에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지고(至高)의 수행일 것이다.
◆순교자들의 무덤위에 세워진 수도원
디센티스 수도원은 700년경, 시지스베르트(Sigisbert) 수도승이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뤽세이(Luxeuil) 수도원에서 이곳에 와 움막을 짓고 수행함으로 시작되었다. 그때 이곳 원주민인 플라시두스(Placidus)는 시지스베르트를 돕다 프래시스 빅토(Praeses Vitor)에게 피살되었다. 그가 순교하지 않았다면 일찍 수도원이 세워졌을 것이다.
수도원은 750년에 우리친(Ursicin) 주교가 순교자 플라시두스와 수도승 시지스베르트의 무덤 위에 건립했다. 우리친 주교는 자신이 직접 수도원장의 직책으로 그곳에 몰려든 수도승을 지도하며, 베네딕트 규칙을 준수하는 수도원으로 만들어갔다.
디센티스 수도원은 여러번의 외부 침입으로 파괴되었다. 디센티스 수도원이 겪은 아픔의 역사는 수도원 역사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도원 곳곳에 순교자의 흔적이 남아 디센티스 수도원이 순교자의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특히 940년 사라센 제국의 침입은 수도승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고, 초기 수도원의 영광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제2의 전성기는 오토 1세와 프레드릭 1세의 도움으로 시작되었다. 황실에서는 수도원에 거대한 영지를 하사했다. 그리고 황실 자녀들도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그 가운데서 수도원장까지 나왔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우아하면서도 장엄한 바로크 건물 수도원은 수도원장 아델베르트 2세(Adalbert II)와 아델베르트 3세가 건축했다.
수도원은 또한 프랑스 혁명으로 다시 파괴의 고통을 겪었고, 스위스 지방 정부의 법령에 의해 수도승 입회 금지란 역경도 겪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이 땅의 모든 존재는 역경의 산물이다. 그래서 성경의 인물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한 것이다.
◆두개의 교회로 되어
디센티스 수도원에는 인상적인 교회가 둘 있다. 하나는 성 마틴(St. Martin) 수도원 교회 인데, 성 마틴 수도원 교회는 그 규모 때문에 방문자들이 놀란다. 포어아를베르크(Vorarlberg) 바로크 양식의 2개의 탑으로 된 수도원 건물은 사람들의 시야를 사로잡고도 남았다. 교회에 들어서자 세 줄의 창문을 통해 햇빛이 교회의 하얀 내부로 쏟아지고 있었다. 겨울에는 알프스의 눈이 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날 것 같았다.
본당은 전체 교회의 절반만 차지하고, 나머지는 성가대와 제단이 차지함으로 교회는 독특한 깊이감이 있었다. 교회는 바닥과 벽과 천창이 일체를 이루는 것 같았다. 교회당 앞의 제단화(祭壇畫)와 천장화(天障畵)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교회당 중앙에 서서 교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하늘이 열리는 것 같았다. 천장화는 바로크적인 아이디어였지만 하늘에 향연이 베풀어지는 것 같이 밝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디센트스 수도원 방문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마리아 교회(The Church of our Lady)이다. 마리아 교회는 수도원 교회 뒤쪽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리아 교회는 디센티스 수도원의 초기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세 개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애프스(apse)는 980년에 지었고, 중앙 에프스는 거대한 제단이다. 교회 천장에는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네오 바로크 형식의 아치형이다.
마리아 교회의 내부는 후기 고딕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양식의 건축 형태를 보여준다. 나는 마리아 교회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쉼과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교회당 의자에 앉자 마음 속에 깊은 안식이 찾아왔다. 모든 피로가 한순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리아 교회가 가진 영적인 힘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순례자들이 마리아 교회를 찾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의 추구
디센티스 수도원에는 40여 명의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20여명이 수도승인데 최근에 입회한 수도승도 있고, 아주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한 수도승도 있다. 그 중 루치오(Lucio)는 90세를 훌쩍 넘긴 수도승이다. 이들은 지금도 베네딕트 규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는 학교는 물론이고 농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수도승들은 어떤 이상을 가지고 이곳에서 생활할까. 그들이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 모인 수도승들은 국적은 물론이고, 성장배경도, 전공도, 직업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은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의 추구였다. 이들은 세상 속에서 영적인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21세기 과학기술의 시대에 2000년 전에 살았던 초기 기독교인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디센티스의 수도승도 르네상스인들처럼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아드 폰테스(Ad Fontes)"를 외쳤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들은 그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고대 텍스트를 읽으며 근원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았던 사람들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독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행위
기도와 예배는 수도원 생활의 생명력이다. 디센티스 수도원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드린다. 수도승의 일상은 이 예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수도승들은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를 경계하며, 새벽 5시 30분에 찬양과 함께 모인다. 조용한 아침의 시간에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침에 듣는 시편 말씀은 수도승의 마음에 내려앉아 그날의 양식이 된다.
7시 30분에는 거룩한 미사가 집례된다. 이 시간에 수도원 형제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며 그리스도와 하나되고, 형제들과 하나된다. 수도승의 삶은 기도와 찬양으로 시작해 기도와 찬양으로 끝난다. 수도원은 평화의 공간이다. 세계 곳곳에서 디센티스를 찾는다. 깊은 평화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온다. 깊은 평화는 어디서 올까. 이 평화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온다.
그래서 수도승들은 기도하고, 거룩한 책을 읽고, 노동한다. 거룩한 독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행위다. 하늘의 소리가 자신을 찾아오면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그래서 거룩한 독서의 읽는 행위는 듣는 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디센티스 수도원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의 소리를 읽고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소리를 내서 책을 읽으면 그 글 속에 담긴 기운이 내게 전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를 통해 기운을 구한다는 인성구기(因聲求氣)의 책 읽기를 권했다. 소리를 들을 때 그 책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소리, 그 하늘의 소리가 디센티스에 머문다.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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