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용된 권리, 악성민원]"관물대 면적 알려달라" 황당민원 시달리는 교정시설

"정자채취 외부병원 진료 거부당했다", "밥이 맛없다"
하루에 100건 넘는 정보공개 청구, 인권위 진정, 고소·고발에 녹초
교정·교화 어렵게 하고 교정직 공무원 정신건강도 위협

교도소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교도소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구치소, 교도소 등 교정당국이 악성민원으로 시름하고 있다. 수용자 인권 강조 추세 속에 수용자나 가족들이 원하는 조치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성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실태는 교화 및 사회복귀라는 기관 운용목적에도 해악을 끼치고 있다.

◆황당 민원, 정보공개 청구가 무기

대구구치소 민원실 소속 김모 교감은 아직도 지난 5월 어느날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수감 중인 배우자와 화상접견을 하고자 찾아온 50대가 장비 이상으로 접견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반 접견은 다음 시간대에 잡아줄 수 있지만, 화상접견은 30분 단위로 예약자가 있어서 이런 조치가 불가했다. 추후 공석에 대해 우선권을 주겠다며 최선의 대안을 제시했으나 여성은 막무가내였다. 오전 내내 민원인들이 가득한 민원실에서 큰소리로 욕설을 하면서 난동을 피웠다. 이 여성은 이후로도 두차례 더 찾아와 장시간 소동을 벌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다. 김 교감은 "경험 상 강경하게 대응할 경우 민원인이 문제를 더 과장하고 키우기 때문에 저자세로 진정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일부 민원인이 직원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다 보니 다른 민원인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호소했다.

실소를 금치 못할 수용자들의 황당 민원도 여러가지다 '정자 채취를 위한 외부병원 진료신청을 거부 당했다', '외부 생필품 반입을 거부당했으니 피해를 보상해달라', '밥이 맛없다'며 민원을 넣고 목소리를 높이는 식이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담당자를 곤란하게 하는 수단도 있다. 대표적인 방식은 정보공개청구다.

구치소나 교도소 모두 수용자나 그 관계자들로부터 정보공개청구가 매일같이 쏟아진다. 2019년 이후 정보공개 청구는 대구구치소가 3천979건, 대구교도소가 7천650건이다. 수용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공개 청구도 있지만 상당수는 업무 담당자를 괴롭히는 목적의 정보공개 청구로 추정된다.

대구교도소에서는 2019년에는 특정 수용자가 하루에 101가지 항목의 정보공개 청구를 낸 적도 있다. 각 수용거실 면적과 관물대 면적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모든 업무 담당자의 이름을 요구하는 식이다.

대구구치소 정보공개청구 담당 강모 교사는 "법령을 요구하는 경우 분량이 A4용지 3천장씩 된다. 청구 한 건에 일주일 씩 매달려야 처리가 가능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며 몸서리를 쳤다.

확인이 번거롭거나 보안등급이 높아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의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정작 공개처리가 되면 내용은 수령 안 하는 경우도 알려진 수법이다. 비공개 처리가 되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재판에 출석하는 이유로 외출을 나가기 위한 꼼수다.

같은 이유로 교도관 출장 내역, 교도소 업무추진계획 등 서류 열람을 신청하기도 한다. 이런 서류들은 정보공개 청구 시 해당 관청을 직접 찾아 열람하도록 돼 있다.

대구교도소 운동장. 대구교도소 제공
대구교도소 운동장. 대구교도소 제공

◆고소·고발·진정 남발에 정신건강 위협

각종 민원이 직원을 대상으로 한 수용자들의 고소나 고발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직원들을 상대로 제기된 고소·고발 사건은 2019년 이후 대구구치소 190건, 대구교도소가 460건에 달한다.

이 중 현재 조사 중인 11건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및 각하 처분이 나왔을 정도로 고소 내용 역시 대부분 신빙성이 떨어지거나 부적절한 내용이 많다. 직원이 처방약을 빼앗아갔다거나, 방을 혼자 쓰고 싶은데 다른 수용자들과 함께 지내게 했다는 식이다. 한 관계자는 "과거 근무지에서는 야간 근무를 서는 교도관들 발소리가 시끄러워 수면권을 침해받았다고 고소한 사례도 있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권위 진정 역시 비슷한 목적으로 쓰인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수년 간 재소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한 진정 건수는 3천건 안팎이던 건이 2018년 4천322건, 2020년 4천124건, 2021년 4천522건 등 연평균 4천건대로 증가했다. 정작 인권위가 타당한 진정으로 판단해 권고 결정을 내린 비율은 1% 미만이지만 진정이 접수되는 것만으로 담당자는 상당한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수용자들이 정당한 요구나 지도에 따르지 않고 이런 방식을 무기 삼아 도리어 우위에 서려고 하면서 업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담당 직원들의 정신건강도 위협하는 실정이다.

대구교도소 수용거실. 대구교도소 제공
대구교도소 수용거실. 대구교도소 제공

대구구치소 관계자는 "수용실에서 벨을 눌러서 가보면 작년 석가탄신일이 며칠이었냐고 물어보거나, 지금 어느 사거리에 차가 막히느냐고 물어보는 식으로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며 "심하면 출근하기가 싫고 이명현상 같이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교정본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정공무원 4명 중 1명은 정신건강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정공무원의 공격성과 우울 위험군 비율은 지난해 각각 3.9%로 2년전보다 각각 0.7%p(포인트), 1%p 높아졌다. 불안과 비인간화 위험군 비율 역시 각각 4.2%, 2.5%로 2년전보다 0.8%p, 0.3%p 상승했다.

김시숭 대구구치소 교정협의회 고문은 "수용자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악성민원을 방치하면 교정·교화 기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다른 대부분의 수용자들도 피해를 입는다"며 "온당하지 않은 방식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 인권과 교정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교도소 전경. 매일신문DB
대구교도소 전경. 매일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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