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용된 권리, 악성민원] 교사 98% "민원 스트레스 '심각'"

생활지도 다음으로 큰 스트레스는 '민원'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이 공교육정상화 입법촉구 집회에 참가한 교사들로 가득하다. 지난달 21일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이 공교육정상화 입법촉구 집회에 참가한 교사들로 가득하다. 지난달 21일 '교권 보호 4법' 통과 이후 일시 중단했던 재개된 이번 토요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3만명이 참가해 '교권 보호 4법만으로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막을 수 없다'며 아동복지법 등 후속 입법 통과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악성 민원에 교단이 멍들고 있다. 서울 서이초, 대전 용산초 등에서 근무하던 극단적 선택을 한 데 이어, 최근 의정부 호원초에서 담임을 맡던 고(故) 이영승 교사가 민원으로 인한 순직이 인정되면서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고충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 수성구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얼마 전 발가락 깁스를 한 학생의 부모로부터 '학생 한 명을 정해 아이를 부축하도록 해 달라'는 민원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학생은 비교적 잘 걷는 상태였고, 부축을 돕는 학생이 다칠 우려가 있어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자 학부모는 삿대질과 함께 "측은지심이 하나도 없다"며 A씨에게 고함을 질렀다.

A씨는 "교장까지 나서 다른 교사를 붙여주겠다고 설득한 끝에 겨우 돌려보낼 수 있었다"며 "충격으로 그 학생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며칠 병가를 냈고, 이후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떠올렸다.

민원으로 인해 교사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학생을 상대로 한 생활지도만큼이나 큰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전국 유치원 및 초·중·고 교직원 3만2천9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 '교직생활 중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생활지도(46.5%) 다음으로 민원(32.3%)이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대구 응답자들에 한해서만 봤을 때도 생활지도(51.5%) 다음으로 민원(31.5%) 때문에 힘들어하는 교사들이 많았다.

교사들이 받는 민원 스트레스 정도를 묻는 질문엔 '심각하다'(매우 심각 79.8%, 심각 18.2%)고 응답한 교원이 전체 응답자의 98%에 달했다.

최근 정부는 지난 9월부터 학생 생활지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담은 '생활지도 고시'를 시행했다. 이에 맞춰 대구시교육청도 올 연말까지 각급 학교의 '학생 생활규정'을 제·개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교직 사회에선 민원 종결권 등 학교가 자체적으로 악성 민원을 차단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보미 대구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학교 민원 문제의 핵심은 규정을 벗어나거나 무리한 요구를 담은 민원들을 1차적으로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며 "민원들을 수합해 분류한 뒤 의미 있는 민원은 교사가 답변을 작성한 뒤 학교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답변을 하고, 비정상적이거나 너무 반복적으로 제기된 민원들은 종결 처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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