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 초대석] 兵者는 詭道也, 政者도 궤도야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하마스에게 당한 이스라엘군이 '철검작전'을 펼치겠다고 했다. 세계 언론은 인도주의를 부르짖지만 이 작전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러한 기대가 틀렸다고 본다. 내 눈엔 '실시된 지 오래'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손자가 '병자(兵者) 궤도(詭道)야'라고 한 것을 놓치고 있다. '가장 치열한 군사(軍事)'인 작전은 속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하마스가 속이고 기습했둣이 이스라엘도 하마스와 세계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놓고 이미 상당 작전을 구사했다.

지상군이 진격하는 2단계 작전을 언제 할 것인가에 왜 주목하고 있는가. 그것이 '바람잡이'라는 걸 모르는가. 소매치기는 바람잡이가 설칠 때 일을 끝내 버린다. 바람을 잡은 뒤 소매치기하는 법은 없다. 바람잡이는 소매치기범이 사라질 때까지 사람 눈을 붙잡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잽을 날리다 덤벼들어, 스트레이트를 퍼붓고 자빠뜨린 후 주짓수를 펼치거나 파운딩 기술로 하마스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순간 자칭 인도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시끄럽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들처럼 '잽'으로만 한다. 어제도 오늘도 밤마다 특공대와 공군기를 넣어 날렵히 '가자 메트로'를 부순다. 하마스가 로켓을 쏴준 날은 응전할 핑계가 있으니 더 신나게 침투한다. 날이 밝으면 부대를 철수시켜 전날 작전을 분석해 더 좋은 공격을 한다. 대구 면적의 절반도 되지 않는 가자 지구에 많은 병력을 넣는 것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날렵하지 않은 다수 병력은 부비트랩에 걸려 폭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용감하게 혹은 시키는 대로만 하는 멍청이를 '부비'(booby)라고 한다.

철검은 전쟁이 아니라 '전역계획'이라는 데도 유의해야 한다. 선거운동은 투표일이라는 종료점을 정해 놓고 한다. 투표일까지 법이 허용한 모든 수단을 써서 유세하는 것을 영어로 캠페인이라고 한다. 전쟁은 목적을 갖고 하는데, 그 목표를 이루는 시기까지 정해 놓고 하진 못한다. 그러나 작은 전쟁이라면 언제까지 이룬다고 해 놓고 계획에 따라 물자와 인원을 투입할 수 있다. 시한을 정해 놓고 집중 작전하는 것을 특별히 '전역'(戰役·campaign)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에 패한 것이 하마스에게 당한 이스라엘과 흡사해 보인다. 국힘도 전역을 준비했다. 60일이라는 시한(時限)을 갖고 인요한의 혁신위를 만든 것. 필자의 관심은 '이 혁신위는 본진일까 특공대일까'에 있다. 방금 밝혔듯 이스라엘은 신묘한 혼란을 추가했다. 바람잡이를 해야 하는 특공대로 하여금 소매치기 역할도 하게 한 것. 이 때문에 대기하는 지상군이 바람잡이가 돼 버렸다.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이렇게 속여야 한다.

DJ를 존경했던 '순천 사람' 인요한은 5·18 묘지 참배로 혁신위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준석과 홍준표 등에 대한 사면부터 논의했다. 광주 정신을 잊고 이준석과 홍준표를 괄시해 국힘이 보선에서 졌던가. 이렇게 하면 젊은 층이 다시 국힘으로 돌아오는가. 그런데 민주당은 허를 찔렸다고 하고 이준석과 홍준표는 발끈해 버렸다. 아무튼 바람은 잡혔는데, 제대로 잡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바르게 살아왔다고 정직하게 가면 당하는 게 '또한' 세상이다.

1979년 친미였던 이란에서 반미 무슬림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이 축출됐다. 이란 시위대는 망명한 팔레비를 데려오라며 미국 대사관으로 진입해 70여 명을 인질로 잡았다. 1년이 지나도 이 인질을 석방하지 않자, 미국은 이란과 단교하고 특수부대를 동원해 구출하는 독수리 발톱 작전을 펼쳤다. 그런데 출격한 항공기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특수부대원만 죽은 실패를 했다. 상대를 속이지 않고 '정직한 부비'처럼 작전했다가 대망신을 당한 것.

정치 경험이 일천한 이들로 구성된 60일짜리 혁신위가 국힘의 가죽[革]을 바꾸는 '혁신'(革新)을 할 수 있을까. 의사도 아이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놓고 주사를 놓는다. 진짜 혁신을 하려면 상대는 물론 구경꾼인 국민도 완전히 속일 힘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정치는 작전처럼 숱한 사람이 보고 있는 와중에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병자만 아니라, '정자(政者)도 궤도야'다. 국힘 지도부와 인요한은 궤도를 품고 있는지, 어떤 궤도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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