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요즘 MZ 주제곡을 꼽자면 이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릴스, 숏츠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이 노래는 인디밴드 '이세계'의 '낭만젊음사랑'이다. 기타 연주 위에 얹어지는 담담한 목소리, 잔잔한 멜로디와 심금을 울리는 가사를 듣고 있으면 쓸데없이 아련해지는 탓에 친구에게 갑자기 "Always 고마워 my friend가 돼줘서 I am 신뢰에요~" 따위의 편지를 쓰거나 옛 여친에게 "자니..?" 카톡을 보낼 수도 있으니 주의.
그렇다. 이번 MMM 주제는 바로 낭만이다. 더욱이 지금은 가을!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요동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이 시대의 MZ들은 과연 낭만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낭만 일타강사의 족집게 특강을 들어보자.
◆제1강 '해브 어 굳이데이'
여러분, 내가 누구다? 낭만 일타강사 '낭만도사'다. 시간이 미친 듯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어제 새해 종 치는 소리 들은 것 같은데 벌써 11월이라고? 그래, 나도 너무 당황스럽다. 그래도 얘들아 어쩌겠어. 이 정신 없고 각박한 세상 속에 우리는 뭘 찾아야 한다? 낭! 만! 이다~ 밑줄 그어라.
자 오늘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이거야. 낭만 하면 떠오르는 것, '굳이데이'. 우리가 '구태여'라고도 쓰는 그 '굳이'라는 부사에 영어 '데이'(day)를 붙인 말이야. 풀어 쓰자면 '굳이 뭘 하는 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자. 가수 우즈가 한 달에 한 번 굳이데이라는 걸 정해두고 산다는 게 알려지면서부터라고 해. 자, 그 밑에 설명 누가 읽어볼래? 그래 헌재가 읽어보자.
"그날은 굳이 굳이 소리가 나오는 일을 하나씩 하는 날이래. 조개구이 먹고 싶으면 굳이 인천까지 가서 먹고 온다거나…. 우즈 왈(曰),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
정리해보면 뭐다? 굳이데이는 귀찮더라도 낭만적인 것을 찾아서 일부러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낭만 신봉자들에게 참 은혜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치? 그럼 이번엔 굳이데이의 예시를 한 번 살펴보자.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되지만) 굳이 전망 좋은 카페에 가서 멍 때리기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되지만) 굳이 직접 서점 가서 책 사오기 ▷(집 근처에 막창 가게 있지만) 굳이 안지랑 가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막창 먹기 ▷(카톡 보낼 수 있지만) 굳이 손 편지를 써서 우표 붙여 보내기 ▷(아무데서나 들어도 되지만) 굳이 한강에 가서 좋아하는 음악 듣기 ▷(내일 출근하지만) 굳이 밤 바다 보러 떠나기 ▷(앞산에서도 볼 수 있지만) 굳이 일출 보러 정동진 가기 등이 있다고 하네. 이해하기 쉽지?
정말 '굳이?'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일들이지만, 굳이데이를 직접 해 본 사람들은 상당히 만족한다고 해.
얘들아, 우리 여행 떠났었을 때를 한번 기억해봐. 계획대로 너무 자연스럽게 잘 흘러갔던 순간들보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비를 쫄딱 맞았다거나, 신발이 망가져서 맨발로 거리를 걸었거나, 바다에서 파도를 못 피하고 바짓가랑이가 젖었던 순간처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아?
굳이데이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금 수고스럽고 고생을 감수해야하지만 뒤돌아보면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날을 만들 수 있잖아. 그리고 스스로가 정한 굳이데이의 소소한 미션을 완수하고 난 뒤 느낄 수 있는 성취감, 만족감도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그런 의미에서 뭐다? 내가 지난주에 MMM팀과 같이 굳이데이를 보내봤다. 단풍이 드는 이 계절을 그냥 보낼 수 없잖아. 얘기 들려줄게. 어 주현이 수업 끝난거 아니야~ 책 덮지마~
◆제2강 '낭만에 취해'
낮 최고기온 19도, 미세먼지 보통, 구름 약간. 상쾌한 날씨 속에 우리는 청도 운문사로 향했어. 파란 하늘과 약간 불어오는 바람,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 주렁주렁 열린 감까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가을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더라.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아무튼 이래저래 좋았던거야~
우리는 가을 여행을 떠나기 전 미션을 정했어. 가을의 정취를 듬뿍 느끼며 예쁜 낙엽을 줍고, 낙엽이 떨어지는 큰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놓고 둘러앉아 막걸리를.... 아니 각자 시 한 편을 써보는 거야. 또 주운 낙엽으로 예쁘게 장식해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손코팅지로 낙엽을 코팅해 책갈피를 만들어보기로 했지. 얘들아, 상상해봐. 정말 낭만 폭발하지?
운문사로 올라가는 길과 운문사 경내는 단풍이 들다 못해 벌써 잎들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어. 예쁘게 핀 단풍, 은행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도 많았어. 우리도 필름카메라로 옛 감성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을 남겼단다.
운문사 밖, 낙엽이 쌓인 나무 아래에 우리는 돗자리를 폈어.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더니 낭만이 흐른다 흘러…. 아,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가 나올 때 진짜 구름 몰려왔다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에서 마침내 빗방울이 떨어지고 말았다는 가짜 같지만 진짜 같은 얘기는 시험에 낼 테니까 적어놔라.
아무튼 우리는 본격적으로 서로에게 편지를 썼어.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뒀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쓰고, 예쁜 낙엽을 붙였지. 내용은 비-밀.
다음은 손코팅! 옛날 방학 숙제할 때 손코팅 한번쯤은 해봤지? 일단 손코팅지 하나의 비닐을 벗겨내고 그 위에 예쁜 낙엽을 하나씩 올려. 그리고 비닐을 벗긴 또 다른 손코팅지를 겹쳐 붙이고 오려내면 완성! 이제 매년 책갈피를 볼 때마다 2023년 가을의 소중한 추억이 떠오르겠지? 자면 안돼 얘들아. 대답 좀 해줘.
다음으로 대망의 시 쓰기 대회! 우리 어릴 때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 신나게 들고나갔던 사생대회가 떠올라 웃음도 나더라. 이날의 주제는 말할 것도 없이 '가을'이었어.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 막상 시를 쓰려니 시상이 잘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었지. 근데 그렇게 각자가 가을이라는 이 계절에 오롯이 집중해 골똘히 생각하는 과정도 너무 낭만 있었다구.
아무튼 우리가 쓴 시를 MMM 인스타그램에 올려 투표를 해봤다. 4개 시 중에 장원을 차지한 시 소개해볼게. 입에 침 고일 수 있으니 주의.
제목: 가을은 맛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 다람쥐는 밤을 먹고/ 나는 밥을 먹는다/ 따끈한 굴전에 막걸리 한잔/ 제철 맞은 전어에 청하 곁들이니/ 잠이 솔솔 온다/ 추워지면 생각나는 만두전골/ 가을은 맛있다
꼴-깍. 얘들아, 내 얘기 재밌었어? 다시 생각해보니 이날만큼은 다같이 모여 출발할 때부터 운문사를 떠나올 때까지, 시간이 좀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 그런 말이 있잖아.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는 게, 매번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고 거기에 익숙해져서 기억의 강도와 뇌의 자극이 약해지기 때문이라고.
같은 시간이라도 좀 더 새롭고 낯선 경험을 하며 보낸다면 상대적으로 촘촘하게 기억을 채우면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니 우리 한 번쯤은 지난해와 비슷한, 무료한 일상에 '굳이' 새로운 일을 찾아서 시도해보는 게 어때. 다음 수업까지 각자 굳이데이에 해보고 싶은 것 하나씩 적어오는 게 숙제야. 수업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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