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작가의 몸부림

무녀도-김동리 단편선(김동리/ 문학과 지성사/ 2021, 초판 19쇄)

1913년생 김동리 작가는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문학의 가교였다. 그의 문학을 따라 박경리, 이외수 등의 작가들이 자기의 길을 만들었고, 현대문학으로 넘어왔다. 화랑의 후예, 산화, 바위, 무녀도, 황토기, 찔레꽃, 동구 앞길, 혈거부족, 달, 역마, 광풍, 이 책에 실린 제목을 열거해 본다. 이 시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전쟁과 이데올로기 대립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독립이 되기도 전에 민주주의를 맞이하게 되었다. 혁명 없는 민주주의 말이다. 홍수처럼 밀려 들어온 기독교 사상과 굴절된 선진국의 사상은 기존의 전통문화와 삐끗거리기 시작했다. 작품 전반에 무속 신앙과 기독교의 갈등이 표출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전통과 신문물이 이간질을 해가며, 서서히 현대로 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 속에서 상처를 입고, 입히는.

무희인 모화가 귀가 어두운 딸 낭이를 데리고 살면서 겪게 되는 갈등, 그녀가 신문물인 세상과 접신하는 것은 기독교를 신봉하는 아들 욱이를 통해서인 것 같다. 결국 두 사람은 죽는다. 낭이만 홀로 남게 된다. 뒤늦게 찾아온 아버지와 떠돌던 중, 침묵하면서 그린 "무녀도", 그림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없다. 작가는 친절하지 않았다. 그림은 독자가 머리로, 가슴으로 보게 한다. 「혼구」의 정우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는 제자의 마음을 알면서도, 어둑한 거리를 나서며 제자의 집 앞을 스치고 가는 행동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양심을 느낀다. 가난이 원죄이기 때문이다.

흑백으로 펼쳐진 TV문학관이 떠오르고, '그때는 어찌 그리 가난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세대들은 작가의 상상력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흑백 브라운관도 보릿고개도, 무희의 처절한 몸부림에서 보여주는 문명의 지진도 지금 세대는 느끼지 못한다. 젊은 그들에게 작품 속 이야기는 벌써 아득히 먼 신화가 되어 버렸다. 문명 앞에 산화되어 버렸다. 60년대생인 나는 아픔을 토해내는 작가의 몸부림을 그대로 느끼는데 말이다.

백 년 전에 태어났던 작가가 표출한 사회와 현대를 비교해 본다. 액세서리에 불과한 인권이 이제는 주연이 되었다. 역사의 중간자로 진실이 신화가 되어 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들이 실화일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따른다. 가십거리를 위해 약간의 과장은 제쳐두고 말이다. 내가 쓴 글도 백 년 뒤 전설이나 신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귀가 어두운 낭이는 무녀도에 어떤 소리를 담았을까, 궁금해진다.

이풍경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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