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및 필수 의료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교육부가 내신 9등급제를 5등급제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지금은 상위 4%까지 1등급이지만 앞으로 10%까지 1등급이 된다. 1등급이 되면 의대에 지원할 수 있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고 내신 1등급을 확대한 데 이어, 의대 정원까지 늘리면 의대 광풍(狂風)을 피할 길이 없다. 지난 3년간 정시모집으로 의대에 입학한 학생 1천121명 중 911명이 N수생이다. 의대 정원 확대로 현재보다 몇 배의 N수생이 생길 것이다.
보건복지부 생각은 이렇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의사 수를 늘리고, 의료보험 재정을 묶는다. 의사들의 소득이 준다. 견디지 못한 의사들이 필수 의료를 선택하고 지방으로 간다. 일견(一見) 그럴듯하다. 정부는 법률시장을 떠올렸을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로 변호사 수가 늘면서 평균 소득이 낮아졌다. 이런 통계가 있다. 2014~2021년 변호사 평균 소득이 13% 증가하는 동안 개업의(開業醫) 평균 소득은 56% 늘었다. 개업의 평균 소득이 4배 이상 빠르게 증가했다. 정부는 원인을 의사 부족에서 찾는 것 같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개업의 평균 소득은 연 8% 증가했다. 증가율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 의사가 떼돈을 버는 시대가 지났다.
의료시장은 법률시장과 다르다. 의료 수요는 진료비가 어지간히 올라도 감소하지 않는다.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최근 10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지출이 4% 증가했다. 연 증가율은 0.4%에 불과하다. 반면, 의료비는 50% 이상 늘었다. 매년 5%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계층에서 확인된다. 다른 지출과 달리 의료비는 계층에 따른 편차가 작았다. 의사 수가 늘어도 평균 소득이 감소하지 않을 것은 이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 말마따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과잉(過剩) 진료다. 의사는 환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는다. 정보가 많으면 유리하다. 의사는 선의(善意)의 협박을 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이 테스트는 정확도가 80%입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테스트하면 정확도가 99%입니다. 진료비를 더 내고 새로운 테스트를 받겠습니까?" 어떤 환자가 "아니오"라고 하겠는가? 의사는 위험한 진료는 줄인다. 과소(過少) 진료다. 환자는 과잉 진료인지 과소 진료인지 모른다.
의사를 1만 명쯤 늘리면 평균 소득이 감소할지도 모른다. 의사들이 필수 의료를 선택하거나 지방으로 갈 것이다. 어떤 의사가 필수 의료를 선택하거나 지방으로 갈까? 경쟁력이 없는 의사가 필수 의료를 선택한다. 실력이 없는 의사는 지방으로 간다. 의사가 많지 않으면 동질적(同質的)이다. 실력 차가 크지 않다. 의사가 많아지면 실력이 없는 의사도 늘어난다. 실력 차가 커진다. 환자는 실력이 있는 의사를 찾아서 다시 대형 병원,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는 무모(無謀)하다. 모기 한 마리를 잡으려고 대포를 쏘는 것과 같다. 대포를 쏘고도 모기를 못 잡는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지역 및 필수 의료 종사자에게 높은 급여를 주면 된다. 꼭 필요한 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돈을 많이 주는 것이 공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급여가 무한정 올라가지 않는다. 낮은 급여에 쉬운 진료를 하는 것과, 높은 급여에 힘든 진료를 하는 것 사이에 차이를 못 느끼는 지점이 생긴다. 연봉 3억6천만 원에 내과 과장을 채용한 산청의료원이 하나의 사례다.
모(某) 국회의원이 높은 연봉을 줘도 의사가 지방에 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수도권 개업의 평균 소득이 수도권보다 2천만 원 높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2천만 원은 큰 금액이지만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 이 통계는 오히려 강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示唆)한다. 관료들이 영리하지만 간과(看過)한 사실이 있다. 의사들이 그들보다 더 영리하다. "한 달에 세후 40만 원 수입이 느는 정책 수가를 대책으로 들고나왔다. 고맙기 그지없다. 인턴 여러분, 소아과 배 터지니 많이들 지원하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의 페이스북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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