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는 졸업생들이 수시로 찾아온다. 어제는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지금은 촉법소년의 나이를 벗어나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하는 학생들. 고등학교 생활의 희로애락을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는 학생들이 잘 자랐다는 안도와 세월이 왜 이렇게 빠르냐는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가끔은 원치 않은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성적이 모자라서든, 가정 형편 문제나 부모와의 갈등 때문이든, 본인이 원치 않았다는 자체가 진학을 담당했던 교사 입장에선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그 학생들은 오히려 표정이 좋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인싸'가 됐다거나, 자격증을 많이 땄다거나, 모의고사 등급을 깔아줬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눈다.
오히려 자신이 간절히 원했고 학부모도 흔쾌히 동의해 조금 특별한 학교에 진학한 졸업생들이 갈등의 덩어리를 짊어지고 찾아온다. 찾아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서 교문을 통과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모교의 문턱은 졸업생들에게 그렇게 높지 않은데 말이다. 왜 그런지 물어보면, 사실 바쁘다고 한다. 자신이 원했던 곳은 남들도 원했던 곳이기에 그곳의 높은 기준을 맞추는 삶을 살아내려면 하루가 모자란다는 것이다. 내신, 비교과 활동 등 이어지는 스케줄에 자신을 밀어 넣기 때문이다.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도 바쁘다고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편입하려면 국어, 영어, 수학 성적이 어느 정도 돼야 하니 학원에 다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일찌감치 자격증을 따둬야 하기 때문이다.
◆중학생을 넘어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 더 무거워진 어깨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다가도, 성취도의 결과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고 한다. 이것밖에 나오지 않느냐는 실소와 자괴감이 몰려와서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진다고 한다. 아등바등 사는 자기 모습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하등 동물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퇴, 전학, 검정고시 등의 절차를 알아보는 친구들을 보면 자신도 그런 시도를 해보아야 하는지 유혹에 빠진다고 한다. 학부모는 이런 자녀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학부모를 만나 이야기해보면 그들은 다양한 처지와 상황에서 자녀 양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대화 내용엔 우려되는 비슷한 흐름이 있다.
"제가 상고를 나왔으니 우리 아이는 꼭 인문계를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공무원인데 우리 아이는 공무원 이상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과 미래를 꿈꾸는 건 매우 당연한 소망이다. 그런데 이것이 조금은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왜냐면 자녀의 상태와 욕구가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마련된 희망사항이 아닐지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녀의 상태와 욕구란 학습의 수준이나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에 대한 욕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를 두고 다른 계열의 학교를 진학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는가? 부모에게서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를 갈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이 있는가? 수능과 내신을 대비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있는가? 취업을 바로 할 수 있는 독립성과 자신감이 있는가?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꿈꾸는 학교라고 생각해서 진학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현실과 달랐고 3월부터 6월까지는 꿈속을 살았던 것 같아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체력도 안 되고, 부모님께 털어놓을 수도 없고, 힘들었어요."
중학교 시절까지 마냥 부모님 품에서 스마트폰과 학원을 끼고 살았던 아이들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정말 현실임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비바람을 견디게 할 '지주대'
아이들은 가정과 사회를 통해 주입된 특정한 상(象)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세상이 언제까지나 핑크빛으로 존재하기를 바라지만, 사실 세상에는 핑크도 있고 갈색도 있고 회색도 있다. 말하자면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태풍도 분다는 말이다. 그러면 작물들이 온전히 자라기까지 그저 강인하게 버텨주기만을 바랄 것인가?
핵심은 이것을 견디기까지 거름과 지주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 온전한 사랑이 거름이 되고, 자라서는 비바람을 견딜만한 지주대가 있어야 비로소 꽃피고 열매 맺는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심기만 하고 지켜보기만 하거나, 지주대가 될 시기에 거름을 너무 주는 어른들이 있다. 지주대가 너무 커서 작물의 생장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래서 기숙형 학교를 선택하기도 하고, 또래에 기대거나 SNS에 중독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농부의 마음으로 때를 맞추기만 해도 아이들은 잘 자랄 것인데 마치 '맹자'에 나오는 에피소드처럼, 빨리 자라라고 어제 심은 모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아이들은 오히려 강하다. 현실의 엄혹함을 알고 이겨낼 나이가 된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학문들, 학교 생활, 미래에 대한 소망과 현실의 좌절이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버무려지면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고난은 그것을 겪을 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아닐까. 학부모들도 이제 믿으시길 바란다. 내 아이가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사춘기 자녀가 아니라, 내 고민을 들어주는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란 걸.
교실 전달자(중학교 교사, 연필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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