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한(35) 작가와의 인터뷰 약속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달천예술창작공간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로 근무하며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해가 지고 난 뒤에야, 자신의 개인전 '모종의 공간(들): 시작 위의 마지막'이 열리고 있는 공간독립(대구 중구 공평로8길 14-7)에서 이 작가를 만났다. 그는 "퇴근 후에 작업을 틈틈히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구예술발전소 레지던시에 입주해있었고, 올해부터는 집 창고를 리모델링해 작업실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회화를 전공한 작가의 회화 작품은 독특하다. 그는 회화의 방식을 디지털로 가져온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회화의 질감을 띤 종이에 펼쳐보인다. 기존에는 손으로 그린 그림을 촬영하거나 스캔한 뒤 컴퓨터에 옮겨 이미지를 재조합, 재생성했으나 이제는 곧바로 모니터에 '디지털 드로잉'을 한다.
디지털 드로잉의 바탕이 되는 모니터 속 가상공간은 무한정 넓다. 내가 상상하는 풍경, 다양한 시간대를 무수히 펼쳐 놓을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디지털 드로잉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캔버스는 공간이 한정적이지만, 화면 이외의 공간과 그 풍경을 나열해보고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기에는 컴퓨터가 적합하죠.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디지털에서만 가능한 드로잉의 방법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디지털 이미지를 일반적으로 프린트했을 때는 매끈하고 깔끔하기만 할 뿐, 물감이나 그림의 도구 같은 물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작가는 판화지를 통해 질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생각해냈다. 여러 인쇄용 판화지를 시험해 본 결과, 거친 듯하면서도 종이의 질감이 잘 드러나는 하네뮬레의 저먼에칭종이를 사용하고 있다. 인쇄를 직접 해봐야 최종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매번 인쇄소에 시험용을 맡기기는 부담이 커서 프린터기도 직접 구매했다. 작가로서 조금 다른 형태의 캔버스와 물감들을 사는 셈.
그의 작품 속에는 원뿔, 직사각형, 물방울 모양 등 정형화되지 않은 도형 같은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언뜻 보기에 추상적이고, 여러 이미지들과 연결된 지점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작가는 그러한 도형들에 대해 "현실에서 경험하고 느낀 감정들이 가상공간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왜곡과 중첩을 통해 형상화한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무수한 중복을 통해 소멸되거나, 단단한 형상물로 마치 랜드마크처럼 화면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감정의 형태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어머니가 병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던 때, 그는 신을 믿고 의지하면서도 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지에 대해 원망했다. 희망과 절망, 체념,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자신 안에 있음을 느꼈고, '이중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에 그것들이 담기게 됐다.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작업이었을까 싶지만 그는 치유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가상공간에 3인칭 시점, 버드 뷰(Bird view)로 바라보는 듯한 이미지를 구현할 때가 있다. 이는 나의 경험, 감정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바라보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는 작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고, 앞으로 결혼 등 삶의 형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작업 방식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크다고 했다. 그는 "'이요한' 하면 누구나 대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반짝 뜨는 라이징 스타는 싫다. 너무 힘을 주면 부러지게 돼있다. 가늘고 길게, 꾸준히 작업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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