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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24>도연명의 귀향, 귀촌

미술사 연구자

안중식(1861-1919),
안중식(1861-1919), '귀거래도(歸去來圖)', 1913년(53세), 종이에 담채, 15.5×49㎝, 성신여자대학교 소장

고사인물화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교훈을 얻으려 한 전통적인 회화관에서 중요한 장르였다. 그림으로 보는 위인전이다. 중국 진(晉)나라 팽택의 관리였던 도연명은 41세 때 스스로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무명(無名)과 빈곤과 노동을 견디며 살다 63세에 생을 마친다. 시골농부 도연명은 자신의 일상을 160여 편의 시문으로 남겼다. 이 글이 많은 공감을 받아 그는 불후의 은자(隱者)가 됐다.

'귀거래도'는 도연명의 귀향이 주제다. 배를 타고 고향마을로 돌아오는 도연명의 모습, 집 앞의 다섯 그루 버드나무, 사립문 앞에서 그를 맞이하는 식구들, 외따로 떨어져 있는 소박한 집, 집 뒤의 우뚝한 소나무, 집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남쪽의 산, 강가의 숲 사이로 보이는 밭두둑 등에서 도연명의 문학이 떠올려진다.

제목부터 팽택령을 사퇴하며 지은 산문시 '귀거래사'에서 나왔다. 전통사회 지식층 남성에게 관직은 위신과 명예는 물론 생계를 위해서도 마땅히 유지해야 할 직업이자 일종의 신분이었다. 낙향한다는 것은 자신이 속했던 사회에서 잊혀져 시골 사람이 되는 무명을 감수하는 일이다. '귀거래사'는 쉽지 않은 이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다.

버드나무 다섯 그루는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드러낸 글로 여겨진다. 높이 솟은 소나무는 "경예예이장입(景翳翳以將入) 무고송이반환(撫孤松而盤桓)",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려하는데,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거리네"라는 '귀거래사' 구절과 연관된다. 밭두둑은 도연명의 노동을 나타낸다. "새벽이면 나가 부지런히 일하고, 해가 지면 쟁기 메고 돌아오네"라는 '경술년 9월 중에 서쪽 밭에서 올벼를 거둠'을 비롯해 도연명의 농사일을 나타내는 시구를 안중식이 떠올렸기 때문이다.

농부의 삶을 살며 자신의 일상과 노동을 주옥같은 문학으로 승화시킨 도연명은 벼슬살이에서 부자유와 고통을 느끼는 지식인들에게 흠모의 대상이었고, 그런 결단을 꿈꾸거나 실천하는 정신적 동력이 됐다. 도연명 고사인물화에 대한 수요는 그런 심정의 반영이다. 개인적인 용기의 문제도 있겠지만 가문의 일원인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농사꾼의 삶을 선택하기란 누구라도 쉽지 않다.

1천600여 년 전 도연명이 실천한 직장 그만두기, 시골로 떠나기는 조선시대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실행하거나 꿈꾸는 삶의 한 방식이다.

제목 옆의 잔글씨는 "계축(癸丑) 하일(夏日) 위(爲) 구암인형(龜菴仁兄) 정(正) 안심전(安心田)"이다. 1913년 구암이라는 호를 쓰는 인물에게 안중식이 그려줬다. 관직이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던 왕조시대는 이미 지나간 터라 아마 이분의 은퇴를 축하하기 위한 그림이었을 것 같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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