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가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세력 하마스 사이 전쟁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전쟁의 중심에 성지(聖地) 예루살렘이 자리한다. 신아시리아제국 사르곤 2세 이후 2천5백여년 디아스포라(Diaspora, 강제 이주)를 딛고 유대인이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배경은 성지 예루살렘에 대한 귀소본능이다.
첫 유대국가의 수도이자 다윗을 거쳐 그 아들 솔로몬이 대성전을 건축하며 야훼의 영광을 구현한 땅 예루살렘.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선민의식의 유대교를 넘어 보편 종교의 깃발을 든다. 십자가를 지며 스러진 예수의 부활에서 기독교 복음이 피어난다. 600여 년 뒤, 아라비아 반도에서 온 이슬람교도가 예루살렘에 터를 다진다. 이후 알라의 영광을 알리는 메잔의 구성진 음성이 하루 5번 울려 퍼진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셈족의 3대 종교 구심점 예루살렘을 두고 얽힌 상황이 꼬여만 간다.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갈등을 녹여 인간을 구하는 날을 그리며 성지 예루살렘의 역사로 들어가 본다.
◆비아 돌로로사,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고난의 길
사반세기 전이다. 여가수 김태영이 「혼자만의 사랑」으로 전파를 탔다. 호소력 짙은 허스키 음색에 비장한 느낌의 선율은 사랑 잃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 노래는 번안곡이다. 원곡은 샌디 패티가 부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라틴어 비아(Via)는 '길', 돌로로사(Dolorosa)는 '슬픔'이다. 슬픔의 길, 흔히 '고통의 길'로 불린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고통 속에 걸었던 길을 가리킨다.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길이 실연의 상처를 보듬는 연시(戀詩)로 번안됐으니... 아무튼 김태영의 번안곡은 큰 인기를 모았다.
비아 돌로로사를 찾아 예루살렘으로 가보자. 성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 구시가지 동서남북 사방에 4개의 큰 대문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그중 동쪽 문을 사자의 문(Lion's Gate)이라고 부른다. 감람산(올리브 동산) 겟세마니 방향이다. 사자의 문 안쪽은 이슬람 지구다.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유대, 기독교, 이슬람, 아르메니아의 4개 지구로 나뉘어 나름 평화롭다.
사자의 문을 지나면 이슬람 지구를 관통하는 일직선 도로가 펼쳐진다. 이를 따라 걸으면 이슬람 계열 알 오마리예(Al Omariyeh) 초등학교가 나온다. 안토니아 요새로 불렸던 이곳이 로마의 유대 책임자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 근무지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판결을 받았다는 전승이다.
이곳보다는 헤롯 대왕 궁전에서 재판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설도 있지만, 기독교계에서는 이곳으로 여긴다. 여기서부터 예수 그리스도 무덤이라는 성분묘(Holy Sepulchre) 교회까지 길을 '비아 돌로로사'다.
◆기독교 성지 비아 돌로로사에 남은 예수 그리스도 흔적
비아 돌로로사는 모두 14개의 장소로 구성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을 판결받은 폰티우스 필라투스 근무지가 1장소다.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되고 묻혔다는 성분묘 교회를 14장소로 본다. 탐방객들은 1부터 14장소까지 한곳 한곳 살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의미를 곱새긴다.
지금은 초등학교가 된 사형판결 장소를 둘러싸고 19세기 로마 가톨릭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3개의 교회를 세웠다. 선고와 십자가수형(Condemnation and Imposition of the Cross)교회, 채찍질(Flagellation)교회, 에케 호모(Ecce Homo) 교회다.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 넘어지고, 성모 마리아를 만나고, 키레네 출신 시모네의 도움을 받고, 다시 넘어지는 곡절 끝에 골고다 언덕에 오른다. 여기서 처형돼 묻히는 과정의 비아 돌로로사 14장소는 기독교의 상징과도 같다. 비아돌로로사 바로 아래쪽에 붙은 곳이 유대인의 정신적 구심점인 통곡의 벽(Wailing Wall), 일명 서측 벽(Western Wall)이다.
솔로몬이 세운 야훼 대성전의 서쪽 방향 벽으로 추정된다.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쓴 유대인들의 열광적인 기도는 충분히 이국적이다. 유대인들이 성전 파괴를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 생겼다는 설도 전한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유대인이고, 기독교 역시 유대 역사서 구약성경을 믿는다. 따라서 통곡의 벽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공통 기반인 셈이다.
◆비아 돌로로사, 통곡의 벽, 바위(황금)돔... 3대 종교의 만남
통곡의 벽 바로 위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돔 건축물이 시선을 모은다. 흔히 황금돔이라고 부르는 바위돔(Dome of the Rock)이다. 이슬람 초기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압달 말릭이 692년 완공한 모스크다. 지구촌 이슬람 ansadurnjs에 남은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이다. 오스만 튀르키예 지배 시절 팔각형 외형을 갖췄다. 황금색 휘황찬란한 치장은 1959년-1961년 사이 공사, 이어 1993년 보수한 결과다.
황금돔의 역사는 고작 60년 좀 넘는다. 그러니, 황금돔보다는 바위돔이 더 적확하다. 바위돔은 단순히 이슬람 모스크를 넘어 유대교와도 맞물린다. 바위돔이 있는 장소는 솔로몬 성전의 본건물이 자리했던 곳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바위돔이 있는 이 언덕을 성전산(Temple Mount)이라 부른다. 그 자리에 이슬람 모스크 바위돔이 자리하니, 이슬람교와 유대교, 나아가 기독교가 동시에 성지로 신봉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슬람 측은 성전산 자체, 혹은 성전산에 만든 종교시설 단지를 알아크사(Al-Aqsa)라고 부른다. 바위돔은 알아크사의 핵심이다. 2000년 예루살렘을 찾았을 때 자유롭게 알아크사 지구를 출입하며 바위돔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예루살렘을 다시 찾았을 때는 통곡의 벽에서 통제돼 알아크사 지구로 올라갈 수 없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봐야 할 뿐... 이스라엘 정세가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여서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들어가 볼 수 없지만, 왜 바위돔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해진다.
◆성전산(알 아크사) 바위(황금)돔... 야훼 천지창조, 무하마드 승천 성지
바위돔 모스크 내부에 바위언덕(Foundation Stone, 혹은 Noble Rock)이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 전승에 따르면 야훼가 이 바위 언덕에서 천지를 창조하고 아담을 빚었다. 아브라함과도 관계된다. 나이 100살에 아내 사라에게서 얻은 금쪽같은 아들 이삭을 야훼에게 바치려던 장소다. 이슬람교도 역시 아브라함(아랍어 이브라힘)의 자손(아브라함이 이집트 여인 하갈에게서 얻은 이스마일의 후손)이라고 여기므로 성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슬람교도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깃들었다. 예언자 무하마드가 621년 어느 날 밤 메카에서 날개 달린 신비의 말을 타고 홀연히 이 바위로 온다. 이어 하늘로 올라가 알라를 영접했다고 믿는다. 이 신비의 여행을 무하마드의 언행 가르침 하디스에서 이스라(Isrā)라고 부른다.
무하마드는 이스라 이듬해 622년 메카에서 메디나라 성스러운 도망 '헤지라'를 감행한다. 이슬람교의 막은 이렇게 오른다. 이슬람교 출범의 영적인 기초 '이스라'의 장소가 바위돔이다.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신성시하고 '지하드(聖戰, 성전)'을 맹세하면서 희생을 감내하는 이유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명분도 알아크사 수호다. 바위돔 남쪽에 알아크사 모스크가 자리한다. 이곳에서 금요일 정오 예배가 진행된다. 바위돔이 상징이라면 알아크사 모스크는 기도장소다. 638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슬람 2대 정통 칼리프 우마르 혹은 우마이야 왕조 초대 칼리프 무아위야 1세(재위, 661년-680년)가 건축한 작은 기도장소였다고 한다.
이후 압달 말릭이 바위돔을 건축하면서 확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외관을 갖춘 것은 11세기다. 물론 건축 당시 명문(銘文)이 남아 직접 증거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은 바위돔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구약을 신봉하니 예루살렘 성전산(알 아크사) 바위돔에서 평화의 합의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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